한국일보

세모(歲暮)에 서서

2006-12-28 (목)
크게 작게
사람들이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이 요일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언젠가 일본의 국철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기차 속이나 역에서의 분실물이 가장 많은 날이 화요일이며, 그 다음이 금요일과 일요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가장 적은 날이 목요일이란다.

어째서 사람들이 화요일에 가장 방심을 하는 것일까?

일요일에 잔뜩 휴식한 다음에 다시 일하기 시작하는 월요일에는 모두가 긴장하게 되지만 그 긴장이 화요일이 되면 풀린다. 일이 손에 제대로 잡히게 됐다는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가장 사람들이 마음을 풀어놓기 쉬운 토요일에 오히려 분실물이 적다는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고 본다. 토요일에는 사람들이 그다지 서두를 필요가 없는 것은 한 주간의 일을 다 끝내고 완전히 쉴 수 있는 일요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러시아워’ 때 분실물이 가장 많다는 사실과도 부합되는 얘기다.

일년을 통틀어서 분실물이 가장 많은 달은 4월이라 한다. 아마 화요일과도 같은 심리가 4월에 작용한다고 생각된다. 더우기 4월의 따뜻한 봄날씨는 추위에 움츠렸던 사람들의 마음을 탁 풀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12월에 분실물이 많게 되는 이유를 알만 하다.

토요일은 한 주간의 끝날이며 12월은 1년의 끝달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토요일과 12월의 아주 다른 점은, 토요일 다음에는 일요일이라는 공휴일이 있는 반면에 12월에는 일요일과 같은 공휴일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12월이 되면 사람들은 모두 다 서두르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남은 30일 동안에 청산해서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1년 중 가장 바쁜 ‘러시아워’의 달이라고나 할까? 그러니 분실물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어느 것 하나라도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려서는 안되는 12월인 것이다.

이제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는 12월이 지나가고 있다.

그러한 것들에 전혀 매이지 아니한 어린이들에게 12월처럼 즐거운 때도 없다고 본다. 방학이 되어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고, 눈이 내려 썰매를 타는 즐거움도 있고, 크리스마스가 있어 축제 분위기 속에서 선물을 주고 받으며 설날을 기다리는 부푼 마음이 즐겁기만 한데 어른들에게는 그같은 여유가 전혀 없다.


12월이 다 가기 전에 끝내야 하는 일들이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기 때문에 12월은 그저 바쁘기만 하다.

그리고 그 뒤끝에는 허전함과 서운함이 있을 뿐이다.

“세월은 덧없이 이 해도 다 갔네/그리운 이는 가고 아니 오시네/내 생에 이렇거니 어이 아니 웃으랴!/세상이야 다단해도 봄은 오고 또 가누나/묻노라 저 세상일 얼마나 아득하여 한 평생에 몇 번이나 이렇게 울리려느냐!”
세모에 읊은 용제(容薺) 이행(李荇)의 시다.

예년에 비해 아직은 눈도 내리지 않아 푸근한 세모이긴 하지만 잔뜩 찌푸린 하늘이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아서 스산스럽기 그지없는 것이 역시 세모인가 보다.

그런 세모에 우리 모두 다가선 것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분실물들을 뒤에 남긴 채…

이 성 철(목사/수필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