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듀, 병술년!

2006-12-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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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주영(논설위원)

하루하루 정신없이 살다보니 어느 새 또 한 해가 마감이다.

말린 곶감을 하나씩 하나씩 빼 먹다 보니 어느새 한 줄이 다 없어지듯 세월의 흐름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다. 눈 뜨면 코 배간다고 할 만큼 순식간에 달아나는 세월의 흐름을 누가 멈추게 하랴.

세월은 과거, 현재, 미래의 개념은 있지만 과거로 돌아가는 법은 없다. 과거는 오로지 과거일 뿐, 시간은 미래로 흘러나갈 일만 남아 있다. 죽음으로 향하는 길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때문인지 나이든 사람의 세월에 대한 속도감각은 젊은이들 보다 훨씬 빠르다. 그렇다고 보면 개인마다 모두 마지막 날이 있다는 걸 정확히 인식하고 살아야 할 일이다. 인간의 한평생은 잠깐 보였다,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시간이다. 권세가 있거나 부유한 사람은 그 권세와 부를 평생 누릴 것 같지만 그 것도 마지막 날에는 모두 안개와 같이 사라져 버리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마지막이 있음을 알고 살아가는 자가 지혜로운 자이다. 어디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는 사람만이 시간의 중요성을 알고 사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라 할지라도 언제나 한해의 마지막을 돌아보게 되면 후회로, 또 아쉬움으로 가득찰 뿐, 만족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래서 매해 새날이면 지난날 이루지 못한 것을 금년에는 꼭 이루리라고 다짐하곤 하는데 삶의 끝자락에 서서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처럼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하며 만족한 상태에서 세상을 떠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가 사는 이 하루, 이 순간순간이 얼마나 소중한가.

아무렇게나 쓰고 흘려버릴 시간이 아닌 것이다. 세월이란 가는 것도 아니요, 오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공연히 사람들이 간다, 온다 해서 마음을 이리 쓰고 저리 쓰고 하는데 이것은 온당한 일이 아니라고 본다.

연말이라 해서 다를 것이 없고, 또 새해라고 별스러운 날이 아니다. 단지 새롭게 쓰고자 매듭을 둔 우리 인간의 지혜에 불과하다.

오늘이 가고 또 내일이 와도 그 날이 그날이고, 단지 생각으로 ‘새로운 날이 온다’라고 여기는 것일 뿐이다. 우리의 생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새로운 날이 오면 그저 그 것이 감사하다고 생각하면 될 일이지 세월이 간다, 온다 해서 특별히 요란을 떨 것도, 의미를 부칠 필요도 없다.

오늘은 단지 어제 죽은 사람이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날이니 그만큼 우리가 값지게, 고맙게 생각하며 성심을 다해 살면 되는 일이다.


한 해를 마감하면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매일 매일 다가오는 ‘하루, 하루’ 내 앞에 닥치는 이 ‘순간, 순간’들을 어떻게 맞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다시 얘기지만 오늘은, 아니 이 순간은 어제, 혹은 방금 전에 죽은 사람이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날이요, 시간이다. 방금 전에 죽은 사람에게 오늘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지 물어보면 그 답은 정확하다.

물론 죽은 사람은 말이 없지만...

죽은 사람이 그렇게 그리워하고 고마워할 시간, 그 시간을 값있게 살려면 뭐니 뭐니 해도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감사해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진짜 값있는 삶인가는 타인의 삶과 비교해 볼 일은 아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자기 능력이 허락하는 대로 게으름 피지 말고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100% 활용하며 사는 것이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내 앞에 닥아 오는 시간, 시간을 헛되지 않게 사는 것, 이것이야 말로 한 해를 알차게 마감하고 소중하게 맞을 수 있는 것이다.

감사란 작던, 크던, 많던 적던 주어진 데에서 만족하는 것이다. 만족이라는 것은 탐욕이 없는 것을 말함이며 나보다 나은 형편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이모로, 저모로 못한 사람의 처지를 보면서 저절로 감사해 하는 것이다.

이제 곧 병술년이 가고 정해년의 태양이 희망차게 떠오를 것이다. 한 해의 마감에 이어 오는 또 하나의 시간적 매듭이자 연장선인 새해, 우리는 내일을 그리워하는 뜨거운 마음으로 맞아야 할 준비를 해야 하겠다.

아듀, 병술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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