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희망의 끈

2006-12-2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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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지금 기독교인들은 교회적인 의미의 대강절을 지나고 있다. 대강절이란 어드벤트(Advent), 즉 메시아를 기다린다는 의미의 단어로 희망과 소망을 기다리는 절기를 말함이다. 이 시기는 비단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한인들 모두가 희망과 소망을 갖고 기다림의 자세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기다림이란 우리에게 단순히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는 것이 아닌, 내적인 충전이요, 인격적인 수양의 기간이기도 하다.

한인들이 주로 많이 하는 업종이 올해는 정말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너무나 힘든 나머지 소유하고 있던 가게나 건물, 집 등을 팔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해진 한인들이 여기저기서 속출되고 있다. 물가가 비싼 탓에 살기도 너무 버거워 물가가 싼 타주로 이주하거나 한국으로 역이민 하는 한인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그 뿐인가. 우리 같은 소수민족들이 이 땅에 발을 붙이기도 점점 어려워지는 현실이다.


불체자들에 대한 단속도 국가보안을 위배한 자를 색출한다는 이유로 점점 더 거세지고 있고, 노인들이 받아야 할 메디케이드 혜택도 갈수록 점점 더 축소돼 가는 게 현실이다. 이런 와중에서 우리의 생계가 걸려있는 모든 업종들이 지나친 경쟁에다 타민족의 침투로 예전과 같은 경기는 이제 기대하기 어렵고 오로지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만 우리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이렇게 힘든 한 해였지만 그래도 이 가운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다시 기다리는 마음으로 이번 크리스마스 절기를 의미 있고 보람 있게 보내면 좋을 것 같다.

아무리 경기가 어렵고 삶이 힘에 부친다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래도 이곳에 살면 언제고 기회가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이유가 있다.
이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는 2세들을 모두 훌륭히 키워 올해도 각계에 많이 배출했다. 인문계는 물론, 사회, 과학계, 의료계, 법조계 등 각 분야에서 이들은 한인의 역량을 아낌없이 발휘하고 있다. 각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예술인과 스포츠인, 박사, 의사, 변호사, 기업인들이 줄을 잇고 있
다. 또 지난 한 해 우리는 정치적으로 많은 역량을 키웠다. 아직은 미흡하긴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성공의 발판을 밑거름으로 한 명 씩, 두 명씩 정치인들을 배출, 우리의 역량이 미국사회에 소리 없이 커져나가고 있다.

우리는 또한 아무리 어려워도 가난하고 힘든 이웃 돕는 일에 발 벗고 나서 아름다운 한국인의 온정문화를 이 땅에 심었다. 또 숱한 사건 속에서도 동포애를 발휘, 시련 속에 서로 돕는 미덕을 쌓아왔다. 그 뿐이 아니다. 우리의 2세들은 각처에서 숨은 봉사자로 그들의 실력과 능력을 한껏 발휘, 한인사회와 이웃 타민족 사회에 아름다운 인간애를 꽃피우고 있다. 경제는 비록 침체됐지만 오늘도 성실히 살아가는 많은 한인들이 있기에 한인경제도 이대로 주저 않지 만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준다.

“희망과 소망을 갖고 기다리는 자세가 삶에 있어 중요하다”고 말한 빅터 프랭코의 말처럼 올 한해 힘든 일도 많았지만 2007년 한 해를 기다림의 자세로 살아간다면 틀림없이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다림은 어떤 자세로 해야 할까? 특별한 것이 있을 수 없다. 단지 성실하게 매일 매일 삶을 살되, 희망을 갖고 하루아침에 일확천금을 얻는 식의 대박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한 발 짝, 한 발짝 차근차근 걸음을 내딛으며 먼 훗날 맺어질 열매를 기다리는 식으로 살아가는 태도를 말함이다. 또 우리 사회가 이제는 정치력도 많이 커졌으니 주류사회에 역량을 키울 수 있는 희망을 지닌, 즉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리더들의 한인사회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정직성과 도덕성이 작아도 조금씩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자녀들에 대한 성공도 서두르지 말고 작던, 크던 이제
까지 이루어진 모든 열매를 바탕으로 하나 하나 뿌리를 확실하게 내리는 그 날까지 차근차근 전진해 가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더 안정되고 커질 수 있는 우리 사회가 되면 좋겠다. 그러자면 서로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고 하면서 다 같이 잘 사는 내 가정, 내 일터, 내 이웃, 우리 사회가 돼야 한다. ‘빨리 빨리’ 문화에 젖어 기다리지 않고 서두르면 우리의 결실은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만다. 기다림의 미학을 가르쳐주는 대강절, 어느 것이 진정 기다림의 자세인지 한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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