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행복하게 살아가는 성직자들

2006-12-1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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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숙(마리아) (브루클린)

12월 8일자 오피니언 란에 실린 김학곤씨의 글 ‘신부들의 독신주의’를 읽고 나의 생각을 피력한다.로마 가톨릭이 오늘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가장 큰 것 중의 하나가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독신주의였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본능까지도 하느님께 봉헌하며 교회와 결혼한 사제와 수도자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느님의 일은 인간의 상식만으로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 많다. 본능을 참으며 삶을 봉헌하는 성직자들의 삶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이다. 어찌 눈으로 보이고 행동하는 본능만이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하겠는가?


성 프란치스코 성인은 가장 쉬운 것이 물질 봉헌이며 본능인 성욕을 억제하면서 그 고통을 봉헌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 하였다. 성인도 그 고통을 잊기 위해 맨몸으로 눈밭과 가시밭을 굴렀다고 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고통을 싫어하고 피하려 한다. 그러나 사제나 수도자들은 그 고통을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안에서 순명으로 받아 우리를 위해, 이 세상을 위해 삶을 봉헌하는 사람들이다. 또한 수많은 성인, 성녀들의 삶을 보았을 때 혼자이기에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떠한 일이든 부작용은 있다. 성직자들의 성추행은 일어나서도 안되는 일이고 어떠한 이유도 변명도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바다와 실개천에 비유할 수 있는 소수의 성직자로 인해 성직자들의 독신주의를 바꾼다는 것은 주님이 주신 근본적인 우리를 인간의 생각으로 바꾸는 것이며 하나가 변하기 시작하면 다른 것도 변할 수 있으므로 가톨릭이란 종교 자체가 변할 것이다.

자식을 키우다 보면 부모의 사랑 속에 자라고 그것을 느끼고 받아들인 아이들은 절대 나쁜 길로 빠지지 않는다. 주님의 사랑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그 사랑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고있는 성직자들은 인간의 본능이 그들을 괴롭힌다 해도 주님의 사랑으로 그 본능을 뛰어넘을 것이다.
교회와 결혼한 성직자들의 삶을 힘든 것으로 보는 보통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그들의 삶 속에는 하느님과 사랑을 주고 받으며 우리들이 느끼지 못하는 더 큰 하느님의 사랑 속에서 세상의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성직자들이 있다.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만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처음부터 결혼하지 못할 몸으로 태어난 사람도 있고 사람의 손으로 그렇게 된 사람도 있고 또 하늘나라를 위해 스스로 결혼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 말을 받아들일만한 사람은 받아들여라”
마태오 19장 11절에서 12절에 있는 구절이다. 그렇다. 사제나 수도자는 내가 하고 싶다고 혼자의 생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이 허락해야 할 수 있는 것이고 본인이 선택한 길이다.

많은 성직자들이 다시 태어나도 같은 길을 걷겠다고 한다. 남과 여의 결혼생활에서 같은 배우자와 다시 결혼하겠다는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우리가 보는 시선에서 인간의 본능을 누르며 외롭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성직자들의 삶은 우리의 삶 보다 더 풍성하고 평화롭고 따뜻한 삶으로 채워준다. 그러기에 지금 이 시대에도 세상이 주는 즐거움과 쾌락을 뒤로 하고 많은 젊은이들이 사제와 수녀, 수도자들의 성소를 찾아 하느님 앞에 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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