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06-12-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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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한 해의 길도 거의 다 왔다. 그 길이란, 이름으로는 단 하나지만 종류로는 수 십 가지의 보이는 길도 있고, 그보다도 더 많은 보이지 않는 길 도 있다.앞길이 있으면 뒷길도 있고 내리막 길, 오르막 길 등등과 사는 길, 죽는 길, 편한 길, 힘든 길 등등 사람 사는 일에도 보이지 않는 길이 수도 없이 많이 있다. 그러니 세상은 온통 길이다.

사람 사는 길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가지고 생각하고 연구하다 보니 도학(道學)이란 사상의 학문이 생겨나지 않았겠는가! 도(道)란 무엇이고, 도(道)를 닦는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가? 나쁜 정신은 마음을 더럽히고 더러워진 마음은 영혼을 죄에 물들게 한다. 죄란 욕심에서 나오느니 마음에서 욕심을 빼내는 작업이 도를 닦는다는 수행의 말이 아니겠는가?


길이란 무엇인가? 처음부터 길이란 없는 것인데 가고자 하는 곳으로 닦으면 길이 되고, 살고자 하면 삶의 길이 된다. 문제는 방향이다. 어디를 가도 동서남북은 있으니 어느 쪽으로 길을 닦느냐가 문제다. 동으로 가고 싶으면 동쪽으로 길을 내고, 남으로 가고 싶으면 남쪽으로 길을 놓으면 된다. 생활에도 마찬가지다. 보리밥에 나물 먹고 사는 생활에 만족한다면 사람은 죄지을 일이 없는데 중이 고기 맛을 알면 죄를 짓게 되고, 목회자가 돈맛을 알게되면 올바르게 서지 못한다. 사치에 맛들이면 집안이 흔들린다. 욕심과 허세가 죄인 것이다.

선한 생각을 하면서 사는 사람은 선한 쪽으로 길을 놓고, 사기 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남의 것을 등 쳐 먹을 생각에 나쁜 쪽으로 길을 놓는다. 어떤 사람은 방향감각 없이 가다보니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게 나이만 먹고 서성인다. 권력 좋아하는 사람은 정치길에 나서서 바람같은 권력을 잡아보려고 허둥대다가, 그 중에는 성공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빚만 짊어진 백수로 변한다.

돈벌이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그 놈의 돈이라는 것이 생각대로 쉽게 벌어지는가! 장사에 대한 경험이나 확고한 뚝심, 또한 든든하게 버틸 수 있는 뒷돈도 없이 간신히 얻어놓은 빈 가게에다 얼렁뚱땅 수리랍시고 해놓고 싸구려 탁자에 앉기 조차 불편한 의자 몇 개 해놓고는 바람에 맥없이 흔들리는 한글 간판 하나 걸어놓으면 돈이 저절로 들어올 거라고 식당장사 쪽으로 길을 놓는 사람들. 옷감의 원단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더우기 화학약품의 내용이 무엇인지 안내문 조차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남의 빨래를 해준답시고 기존의 세탁소 앞에다 세탁소를 여는 사람들, 화장품의 원료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멀쩡한 여자의 얼굴을 극장의 선전간판 식으로 제멋대로 그려가면서 화장품 장사를 하는 사람들, 정치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거들대는 사람들, 그리고 또, 또, 또 …

길을 알면 토정비결을 쓴 이지함의 예견보다 돈벌이도 잘 하면서 인생의 길을 잘 개척하며 살 수가 있겠지만, 그러나 거친 바람이 윙윙 불어가는 허허벌판에서 이민 길 내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삶을 이끌어주는 그 무엇 하나 없는 세상에서 사람 살아가기가 그리 쉬운 일이며, 돌부리 산적한 척박한 이민 땅에다 살 길 내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그래도 사람들은 길부터 내면서 간다.

어제도 갔고, 오늘도 가고, 또 내일도 갈 것이다. 인생을 고해라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거친 바닷길이라 해도 지나고 나면 그 길은 추억을 남기면서 하늘을 향해 뻗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하루를 힘들여 살고서도 저녁 밥상에 가족이 모여 서로서로를 위안을 하다가 잠이 들고, 또 하루를 그렇게 살고 나서는 다 잊어버린다. 추억으로 바꾸는 망각, 그래서 사는 힘이 다시 생기고 그래서 다시 가게 되는지도 모른다.
길! 길이란 지침이고 어디를 가도 방향인데 나는 지금 어떤 길을 닦으며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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