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한인회장의 계산된 제스처

2006-12-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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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수(취재1부 차장대우)

흔히 사람들의 몸짓을 제스처라고 한다. 사전적 의미로는 성실성 없는 형식뿐인 태도나 공허한 선전행위라는 뜻으로 쓰인다.익살스런 제스처는 보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공허한 선전행위를 위한 계산된 제스
처는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런 일이 지난 8일 박동선 씨 구명운동 뉴욕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벌어졌다. 그 주인공은 애당초 초청은 받지 않았지만 우연히 지인의 인도로 기자회견석에 앉은 이경로 뉴욕한인회장. 그는 본보 기자가 취재 사진을 찍으려 하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내가 사진에 들어가면 한국일보가 사진 없이 기사로만 처리한다”며 한 마디 던졌다. 참석자들에게 마치 한국일보가 자신을 소외시키고 있는 것처럼 비추기 위한 계산된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라 객(?)인 사실은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이다.


이날 이경로 회장의 행태를 계산된 제스처로 단정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한국일보의 단독보도로 지난달 7일 남몰래 유니온 스트릿을 청소해온 백봉기 옹에게 뉴욕한인원로자문위원회가 봉사상을 수여하는 자리에서도 똑 같은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이 회장은 큰 소리로 “본인이 빠져야 한국일보에 사진이 나올 것”이라 말해 참석자들을 어리둥절케 했다. 한인사회를 대표한다는 이 회장의 이 같은 태도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보다는 모든 것을 언론 탓으로 돌리는 누군가(?)를 연상케 해 씁쓸하기까지 하다.
이처럼 이경로 회장의 계획적인 제스처는 ‘남의 잔치 가서 주인 행세하기’ ‘얼굴만 내세우고 생색내기’ 등 자신에 대한 빈축을 피해가는 습관화된 행동이 아닌가 싶다.

지난 10월 북한의 핵실험으로 전 세계가 발칵 뒤집어진 때로 돌아가 보자.당시 미주 한인사회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 북한의 핵 실험을 규탄하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한 북한의 핵 포기를 강도 높게 촉구했다.
뉴욕한인사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롱아일랜드한인회와 뉴욕한인봉사센터, 한인권익신장위원회 등은 북한의 핵실험 발표 닷새 만에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규탄시위를 마련하는 등 소신 있고 발 빠른 대응으로 한반도 평화에 대한 한인사회의 메시지를 국제사회와 북한에 강력히 전달했다. 특히 지난 10월17일 유엔본부 앞에서 열린 ‘북한 핵실험 규탄집회’를 주도한 롱아일랜드한인회는 집회가 끝날 무렵 몰려든 미 방송사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적극 활용, 미주 한인사회의 입장을 미국 각 가정에 전달하는 실질적인 성과를 올렸다.

이는 이날 시위에 잠깐 참석, 자신의 입장을 한국말로 간단히 말하고 이내 사라진 뉴욕한인회 이경로 회장과 큰 대조를 이룬다. 시위 내내 비바람이 부는 궂은 날씨가 이어졌지만 사안이 사안인지라 ‘6.25 참전 유공자전우회’와 ‘재향군인회’ 노인들도 자리를 뜨지 않았는데 이 회장은 자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리를 떴다. 오죽했으면, 이날 시위직후 한 참석자가“북 핵 관련 시위는 내용상 뉴욕한인회가 보다 성심껏 임했어야 했다. 본인이 주도하지 못한 행사라고 얼굴만 내비추고 사라지는 모습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며 심한 불쾌감을 표시했을까.

임기 말로 늦은 감도 없지 않으나 이 회장은 이제라도 자신이 한인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찾아 나서야 할 것이다. 남들이 힘들여 이룬 것을 대충 엮어 내 것으로 만들려는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일궈놓은 일에 남이 슬쩍 올라타려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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