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우리는 진정 피해자이기만 할까?

2006-12-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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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취재1부 차장)

미국에 살면서 가장 자주 접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인종차별’이다. 워낙 다양한 민족이 어울려 살다보니 미국 땅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의 대부분이 인종차별 문제로 연결된다. 인종차별을 거론하지 않고 끝나는 일들은 마치 앙꼬 없는 찐빵처럼 보일 정도다.

한인들도 소수민족으로 살면서 어쩌다 미국 땅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기라도 하면 서러움부터 앞선다. 인종차별 문제가 부각되면 목소리도 커지고 왠지 모를 자신감마저 솟구치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인종차별 행위는 엄연히 존재한다. 소수민족 약자로 미국 땅에서 인종차별 피해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부당한 인종차별 행위는 두말할 나위 없이 짚고 넘어가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여기서 한 번 더 생각해보자. 과연 우리가 진정으로 인종차별행위의 피해자이기만 한 것일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인종차별 행위는 인종적 편견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볼 때 한인들만큼 인종적 편견이 강한 민족도 없는 듯하다. 법정 싸움이 불가피한 한인들이 목마르게 찾는 상대는 ‘유대인 변호사’가 많다. 한인 변호사와 실컷 상담해 놓고도 재판장에 들어설 때에는 유대인 변호사를 대동해야 맘을 놓는 경향이 있는 것.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나 보다.

한인들이 운영하는 자영업 현장은 또 어떤가? 막노동을 하며 일손을 거드는 라틴계 이민자에게 반말은 예삿일이 아니다. 손님들 앞에서 서툰 행동이라도 보이면 주인이 대놓고 큰 소리를 지르거나 욕설과 비방을 서슴지 않기도 한다. 필리핀인들은 게으른 민족으로 치부하고 일본인들은 ‘쪽발이’로, 베트남인들은 ‘땅콩’으로 낮춰 부르면서도 자신들이 ‘엽전’으로 불리면 주먹부터 불끈 쥔다. 중국인은 또 어떤가? 화교로 불리던 한국 이주 중국인 이민자들을 서럽게 구박하고 차별했던 일들은 일일이 나열하기조차 힘들 정도다.

이번 오리건주 한인 제임스 김씨 일가족 실종과 김씨의 사망을 둘러싸고도 일부에서는 동양남자가 백인여자와 사는 것이 눈꼴사나워 구조대가 초반에 변변한 수색을 안했고 기자회견 현장에서 눈물을 보인 경찰도 책임문책이 두려워 취한 ‘쇼’라며 비난을 하기도 했다. 어떤 부분에서건 잘못이 있었다면 지적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아예 처음부터 색안경을 끼고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잣대질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거꾸로 약자의 피해의식에서 나온 시각이라는 지탄부터 받을 수 있다.

연말이다. 인류를 구하러 아기 예수가 세상에 온 날을 축하하는 성탄절이고 새해를 앞두고 지나간 모든 허물도 너그럽게 용서하는 마음이 가장 후해지는 시기다. 한국의 모 가수가 부른 노래 가사 중에 ‘~~입장 바꿔 생각해봐, 네가 정말 나라면 넌 그럴 수 있니~’라는 구절이 문득
입가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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