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지금 남북정상회담 해야하나

2006-12-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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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대선을 1년 가량 앞두고 있는 한국에서 요즘 갑자기 남북정상회담설이 확산되고 있다. 새로 취임한 통일부장관이 남북정상회담은 살아있는 현안이며 양쪽 정상에 부여된 과제라고 하여 정상회담 가능성을 띄웠다.
여당의 정동영 전당의장은 “대북 특사 파견과 남북평화 정상회담의 적기가 되었다”면서 내년 3~4월의 시한을 못박아 김정일의 결단을 촉구했다. 한나라당의 정형근 의원은 “남북정상회담이 내년 3~4월 개최를 목표로 이미 실무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고 폭로했다.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포석은 이미 이전부터 준비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고 핵실험을 하여 국제사회에 긴장을 조성하고 있을 때도 한국에서는 통일부장관, 국무총리 등 책임있는 관리들이 정상회담에 대한 희망을 피력해 왔다. 특히 노대통령은 노골적으로
북한의 입장을 편들어 정상회담의 불씨를 살려내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그런데 임기 마지막 해가 되자 조급한 나머지 한 번만 만나달라는 식으로 매달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도 분명하지 않은 상태이다. 한국은 한반도 문제를 남북관계로 풀려고 하고 있지만 북한은 미국과 직접 협상을 하는 북미관계로 보고 있다. 근본적으로 대화의 상대부터가 다르다. 또 남북간의 교류 확대, 핵문제 해결 등에 대한 어떤 획
기적 합의를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추구하고 있는 일관된 목표에서 볼 때 결코 실현될 수 없는 합의로 끝나고 말 것이다.이처럼 공허한 남북정상회담이 왜 거론되고 있으며 어떻게 성사될 수 있을까. 남북한의 이해관계가 충족되어 필요성이 있으면 일종의 정치 쇼로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번에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면 당연히 지난번 정상회담의 답방 형식으로 김정일이 서울을 방문해야 하겠지만 반북한 정서가 만만찮은 한국에 김정일이 온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제 3의 장소이거나 아니면 또 평양에서 열리게 될텐데 이럴 경우 모양새부터 한
국은 북한에 꿀리고 들어가는 셈이다.
한국이 남북정상회담에 목을 매고 있는 상태에서 김정일이 호락호락 응해줄 리도 없다. 우선 막대한 뒷돈을 거래해야만 성사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남북정상회담이 된다면 북한은 핵실험으로 꼬인 국제적 고립상태에서 벗어나고 한국으로부터 막대한 경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계책을 쓸 것이다.

즉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북한이 스스로 핵을 포기하고 모범생 국가로 변신을 할 것이고 남한이 원하는 것도 모두 들어준다는 식으로 나올 수 있다. 그러면 한국의 대선 판도가 요동을 치게 되어 친북좌파정부가 정권을 재창출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올 수 있다.
한편 한국은 막대한 돈을 들여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또 정상회담에서 북한에 막대한 경제 지원을 약속하게 될 것이다. 이 댓가로 받아내게 되는 합의사항이라는 것은 공수표가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오는 대선에 한번 써먹는 용도밖에 없을 것이다. 즉 막대한 국가적 손실을 초래하면서 여당의 정권 재창출을 위한 대선용 남북정상회담이 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이런 예측은 지난 2000년 6.15 정상회담 이후 남북 관계를 대입해 볼 때 쉽게 도출 될 수 있는 결론이다. 6.15 공동성명은 한반도에 더이상 긴장상태는 없고 남북통일이 눈앞에 다가온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이 합의에 따라 한국은 친북정책을 계속하면서 퍼주기로 일관했는데 북한은 그 돈으로 핵무기를 만들었고 한국사회는 좌경사상으로 붉게 물들고 말았다.

남북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 남북정상회담이라면 무엇보다도 필요한 회담이다. 그런 회담은 백번을 해도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을 이롭게 하고 남한은 불리하게 하는 남북정상회담이라면 국민을 속이는 정치 사기극이 될 것이다. 아니 이에 그치지 않고 이적행위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정상회담이라면 국민이 나서서 말려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더구나 선거가 임박한 임기 말에 국정을 엉망으로 만들어 10%의 지지율 밖에 받지 못하고 있는 약체 정부가 무리하게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한다면 누가 보아도 지프라기라도 잡으려는 선거용 회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제대로 남북정상회담을 하려면 새로 국민의 신임을 받은 실력있는 차기 정부가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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