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단체장에게 영어는 필수

2006-12-14 (목)
크게 작게
최윤희(뉴욕시 교육청 학부모 조정관)

매년 5월, 각 학교 교장선생님 및 교사들과 교육계의 중요한 분들을 모시고 한국의 문화와 풍습을 알리고 이 행사를 통하여 참여하는 분들이 자기 학교 한국학생들을 이해하고, 학부모와 학교간의 좋은 유대 관계를 증진하기 위한 스승의 날 행사에 한 한인 단체장이 축사 하기를 원했다.

거절하기 곤란한 상황이었다. 행사 날, 단체장은 단상에 늠름하게 올랐고 “존경하는”으로 시작된 유창한 한국말 연설은 족히 15분 에서 20분을 넘었고 그 분의 축사가 끝났을 무렵에는 좌석의 반이 횡하니 비었다. 교장, 교감, 교사들과 많은 초대객들이 한 사람씩 자리를 뜨고 내가 앉았던 테이블도 우리 학교에서 참석한 사람들만 동그마니 남게 됐다.


하루종일 학교 업무로 피곤했던 많은 참석자들은 못 알아듣는 한국말에 질린 듯 황급히 자리를 떴다. 나는 누구보다도 한국어 사용을 강조하는 한 사람이었지만 이건 아니다 싶어서 어이없는 것은 고사하고 분노까지 느껴졌다. 여기가 시골 유세장도 아니고...

우선 축사 하기 전에 말하는 대상이 한국인인지 아니면 미국인인지 전혀 파악하지 못했던 것 같고 영어로 하기가 불편하면 동시통역을 준비하든지, 아니면 그 자리에서도 요청했다면 사회자가 연설 내용을 영어로 동시통역할 수 있었다.

우리의 좋은 뜻을 전할 수 있는 중요한 행사가 초대객들을 배려하지 않은 것같은 인상을 준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한 분 한 분 초대하려면 행사위원회에서는 거의 6개월 전부터 우선 행사날짜를 미리 학군감과 의논하여 정한다. 행사장소 물색, 예약 초대자 명단 작성, 학교주소 파악, 교장 성함 확인, 초대장 인쇄와 발송, 행사 후 기부한 사람들에게 보낼 감사카드 준비, 프로그램 선정, 공연할 학생과 태권도 사범 및 각 단체에 공연 의뢰, 한복 패션쇼 준비, 교장과 교사 중에서 모델 선정, 한복 대여, 꽃 주문, 음식을 선정한다. 또 각계 각층에서 광고 따오기, 학교별로 좌석 배치, 학부모에게 티켓 판매 등 그외에 많은 일들과 협찬을 부탁하러 모든 학부모들이 발로 뛰고 온갖 인맥을 동원하여 다니는 미용실과 아이들 소아과에 이르기까지 많은 각 학교 학부모님들이 모금하고 명단 확인하고 초대장 전달하고 정성을 다 해 준비하는 행사이다.

한인을 대표하는 분이 전미국 교육계에서 유일한 이런 행사에 전혀 지원은 안하고 권위만 세우려 한국어로만 연설하는 그 용기(?)는 찬물을 끼얹은 결과가 됐다.모든 단체장은 단체를 대표해서 한인들의 행사에 참여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 나아가서는 대표하는 단체의 이익을 위해 정부 각 기관과 활발한 접촉과 교류를 통하여 개인으로는 이룰 수 없는 많은 일들을 단체장이라는 막강한 직함을 이용하여 한인사회에 이익과 한인의 영향력이 극대화되도록 노력하려면 영어가 필수이고, 아니면 영어가 유창한 분과 협력을 해야지... 많은 교장, 교감, 교사, 교육계 인사들을 모시고 치르는 행사에 호기도 아니고 슬픈 경험이었다.

우리는 미국사회에 사교술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공부하고 분석하여야 우리의 노력이 허사가 되지 않고 지혜롭게 생각하여야 님도 보도 뽕도 딸 수 있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