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퍼주고도 왜 맞는가

2006-12-13 (수)
크게 작게
여 주 영 <논설위원>

해마다 12월이 되면 어려운 이웃에게 전해지는 ‘온정의 손길’ 소식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온다. 창밖이 추우면 추울수록 따뜻해지는 온돌방에서 등을 덥히며 자란 우리들에게는 한겨울의 따스한 이런 행사가 별로 낯설지가 않다.

떠나보내는 마지막 달, 12월 앞에서는 어느 누구에게나 손을 내밀고 악수를 하면서 인사를 하고 싶어지고, 길을 가다 만나는 남루한 사람에게도 무엇이건 한줌 손에 쥐어 주고 싶은 마음이 인다. 우리 민족은 본래 따뜻함을 천성으로 지니고 있는 민족이다. 한국의 해군 사관학교를 졸업한 해군 장병들은 해마다 순양함을 타고 먼 바닷길을 다니며 훈련을 하다 낯선 항구에 이르러 이삼일을 지낸다. 병사들은 동남아 기항지의 이름 없는 주점에서 몇 잔의 술을 마시고는 술값보다 몇 배나 되는 돈을 팁이라는 명목으로 선뜻 손에 쥐어준다. 이들의 주머니는 이런 식으로 몇 군데 가난한 항구를 거쳐 미국의 샌디에고 항구에 오면 거의 모두 비어버린다. 그래도 가난에 보태라고 손을 내밀었던 그들의 얼굴은 언제나 환했다.


이런 병사들이 가고 나면 기항지의 주민들은 한국 병사들은 소위 “기마이가 좋다”면서 다음에 올 한국의 순양함을 또 기다린다. 한국인은 남의 어려움 앞에서 온돌처럼 따스하다. 온정의 행사는 올해도 어김없이 온정의 행사가 한인들의 손에서 분주하다. 미국의 온정행사란 대개 자선을 업으로 하는 자선단체나 정부의 예산으로 치러지고 이따금 교회에서 작은 규모로 치러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한인들과 같이 대규모로는 치러지지 않는다. 아니 치르지를 못한다. 예산이 없어서가 아니라 연말이 되면 부풀어 오르는 따스한 마음이 우리들처럼 타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세탁협회에서 해마다 거두어주는 옷들은 거의 새 옷이나 다름없다. 우리나라가 6.25전쟁에 휘말려 추위에 떨고 있을 때 얻어 입던 구호물자, 아무렇게나 돗자리위에 늘어놓고 여기저기 던져주던 그런 옷이 아니다. 세탁하기 위해서 맡겼다가 잊었거나, 이사를 가서 찾아가지 않은 옷이니 그 옷은 아주 깨끗하고 좋은 옷이다. 그런 옷을 다시 세탁하고 다림질도 정성스럽게 해 비닐포장으로 빛갈나게 해서 두 손으로 가난한 자에게 전달한다.

사랑의 터키재단 등 여러 한인단체에서 전달하는 터키, 일부러 작은 것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되도록이면 제일 크고 살이 오른 것으로 선택한다. 그러니 요즘 와서는 한인들의 온정행사를 손꼽아 기다리는 교회나 지역, 구호기관도 여러 곳이나 된다고 한다. 12월에 퍼져나가는 한인들의 온정행사는 12월에 울리는 어느 종소리보다도 더 크고 더 따뜻하다.

미국에도, 뉴욕에도 가난한 사람은 많다. 우리는 왜 그들이 가난한가를 묻지 않는다. 그냥 손을 내어 밀어 손을 잡고, 잡은 손을 흔들면서 온도를 따뜻하게 올리고 싶을 뿐이다. 그들은 매년 우리들이 베푸는 온정에 감격을 하고 돌아간다. 그리고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 다 잊고 산다. 게중에는 오히려 한인들을 차가운 눈으로 째려보기도 한다. 굳이 바라고 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온정을 베풀고도 돌아오는 그들의 냉대, 그 것은 어쩌면 우리가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말쑥한 백인손님에게 친절하던 얼굴의 미소가 남루한 흑인손님에게는 감시의 눈초리로 변하지는 않았는지?

‘친절’은 돈이 들지 않는다. 한 마리의 터키나 따뜻한 옷 한 벌 뒤에 일 년 열 두 달 돈 안 드는 친절로 재투자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문제시 그들이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몇 해 전 워싱턴 하잇츠에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어둠으로 깔린 밤, 그 지역의 모든 가게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