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부정부패, 이래선 안된다

2006-12-0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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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여론조사기관인 갤럽이 최근 발표한 2006년 갤럽 부패지수에서 한국이 베트남이나 아프가니스탄보다도 더 부패한 나라로 평가되었다. 세계 101개 국가에서 여론조사를 통해 정부와 기업의 부패상태에 대한 조사를 한 결과 한국은 조사대상국 중 중간 정도로 남아공, 니제르, 볼리비아의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이 조사에서는 핀란드, 덴마크, 뉴질랜드, 싱가폴의 순서로 청렴도가 높았고 폴랜드를 최하위로 태국, 모로코, 루마니아, 러시아, 우크라이나, 카메룬이 최하위권에 들었다고 한다.

한국은 이제 세계의 11번째 경제대국이고 어느 면으로 보나 세계에서 10번째 정도의 국력을 가진 나라로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특히 첨단산업 분야에서는 세계를 선도하는 그룹에 속해 있다. 그런데 부패지수만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특히 정치와 기업의 부패로 인한 비능률성이 다른 나라에 크게 뒤지고 있어 국가경쟁력의 발목을 잡는 요소가 되어 있다.
정치와 기업의 부패는 일반 사회의 부패를 반영하는 하나의 바로미터일 뿐 부패현상은 이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반에 만연된 현상이다. 예를 들어 취업과 승진을 위한 뇌물수수, 교육현장에서 주고 받는 촌지, 교통위반을 눈감아 주고 돈을 받는 것 등이 모두 부패현상인 것이다.


이런 부패현상은 거의 모든 한국인들의 일상생활에 스며있어 만성적인 고질이 되고 있다.한국인들에게 왜 이렇게 부패가 습성화 되었는지 정확히 원인을 찾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대충 생각하자면 첫째, 우리가 한반도라는 좁은 지역 안에서 오랜 세월을 통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아오면서 우리끼리 생존경쟁이 심했고 이런 생존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변칙적 경쟁을 하여 부정부패가 심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 두번째로, 한국인들이 성취욕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욕심을 더 많이 채우기 위해 부정한 방법을 마다하지 않는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셋째는 한국인들이 대체로 똑똑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부정부패에서도 뛰어난 수법을 발휘하여 부정부패로는 세계에서 앞서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한국인의 부정부패는 오늘의 현상만이 아니라 역사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한국의 백성은 세계 어느 나라의 백성보다도 더 지배층의 수탈에 신음해 왔다. 극단적인 예가 조선 말기로 안동 김씨를 비롯한 외척들이 득세한 이후 나라를 잃을 때까지 부정부패는 극심했다. 매관매직이 성행하여 관직은 돈으로 거래되었고 관직을 사들인 관리는 그 돈을 뽑고 또 몇 배로 남기기 위해 백성의 고육을 짰다. 동학혁명의 도화선이 된 전라도 고부군수 조병갑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이 당시에는 임금인 고종도 매관매직을 했고 왕비인 민비도 매관매직을 하여 자기 재산을 불렸다. 이렇게 극심한 부정부패는 결국 끝장을 보고 말았다. 내각의 대신들이 나라를 통째로 일본에 팔아 넘기고 높은 작위와 많은 재산을 받았으니 기가 막힐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실력자들의 후예인 한국인은 지금도 부정부패로 불법로비를 하는데는 세계에서 일급 선수들이다. 사소한 것으로는 돈을 주고 가짜 영주권을 사는데서부터 외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도 돈으로 뒷거래하는 데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 때로는 부정부패가 어려운 일을 해결하는 첩경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종국적으로 일을 그르치고 패가망신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돈을 주고 가짜 영주권을 샀을 경우 당분간 활용할 수 있지만 들통이 나면 큰 화를 면할 수 없게 되는 것과 같다.그래서 부정부패를 없애는 것이 필요한 일인데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서 정부가 바뀔 때마다 사정이니 부정부패 척결이니 하는 구호를 내세우지만 결국 실패하는 것은 사정과 부패척결을 해야하는 권력자가 부정부패를 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도 개혁을 금과옥조로 삼았지만 지난 4년간 수많은 부정부패 사건이 발생했고 그 배후에 권력자들의 관련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박정희대통령 시절 10월유신을 단행하면서 기자들에게 촌지를 주는 관행을 뿌리 뽑겠다고 각 기관의 기자실에 촌지를 주지 못하도록 금지시켰다. 그렇게 몇달을 지나는 동안 기자 세계에는 고통스럽지만 촌지라는 관행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런데 청와대가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촌지를 주었다는 소문이 났다. 그러자 위의 눈치를 보고 있던 각 기관에서 출입기자들에게 다시 촌지를 주기 시작하여 촌지 관행이 되살아나게 되었던 것이다.

부정부패의 세계에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이 그대로 통한다. 정치가 썩어서 부정부패를 하면 바닥에 있는 국민들까지 모두 썩고 만다. 지금 한국의 부정부패는 오래동안 지배층이 만들어 놓은 결과이다. 이 부패를 없애자면 지배층의 부정부패부터 없애야 한다. 권력자가 자신부터 깨끗하고 부패를 없애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나선다면 한국은 맑은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청계천 물을 맑게 하는 것보다도 우리 민족에게 더 필요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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