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고구려의 역사가 주는 교훈

2006-12-0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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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원(취재1부 부장대우)

요즘 한국은 물론, 미주 한인사회에서도 ‘고구려 열풍’이 뜨겁게 불고 있다.비디오 대여점에서는 ‘주몽’과 더불어 ‘연개소문’과 ‘대조영’ 등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 사극의 인기가 절정을 이루고 있고 이에 질세라 서점에서도 고구려 관련 역사 서적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한다.
또한 로스앤젤레스에서 뉴욕에 이르기까지 ‘고구려 역사 관련 세미나’가 열릴 만큼 한인사회의 고구려 신드롬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갑자기 왠 고구려 열풍일까?

대부분의 사학자들과 사회 비평가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고구려는 우리나라 역사 속에 힘과 권력을 가장 크게 떨쳤던 나라이다. 비록 드라마에 나오는 내용이 역사에 100% 충실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고구려가 영토 확장을 통해 중국까지 세력을 떨쳤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평소 학교에서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왜적과 오랑캐의 수없는 침략을 이겨내 왔다’라고 배운 대부분의 기성세대들에게 고구려의 개척정신은 민족의 자부심을 잠시나마 부풀어 오르게 하는 각성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4년 전부터 ‘제 2의 애국가’가 돼 버린 ‘오~필승 코리아’처럼 말이다.
현재 국제, 또한 국내 정세를 보면 고구려 열풍이 왜 부는지 쉽게 이해가 간다.


이라크 전쟁만 해도 그렇다. 파병을 반대하는 한국인들은 ‘우리의 국익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전쟁에 왜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볼모인 마냥 우리의 아들과 딸들을 보내느냐’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아무리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 역사책을 샅샅이 뒤져봐도 주몽이 ‘나 힘들어서 왕 노릇 도저히 못해먹겠소’라는 대목은 듣거나 읽을 수가 없다.
물론 고구려 열풍은 텔레비전 드라마를 통한 ‘시대적 풍조’(trend)에 지나지 않는다. 고구려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중국을 공격이라도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하지만 뉴욕과 뉴저지에 살고 있는 한인들에게 있어 고구려 영웅들의 개척정신은 현실적으로 큰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코리안들이 맨손으로 일궈냈다가 중국과 인도계 등 타민족 상인들에게 고스란히 내준 플러싱 메인 스트릿과 맨하탄 브로드웨이 상권이 하루아침에 우리의 손에서 떠난 것은 아니다. 한인 상인들이 장사가 잘 되는 것만 믿고 자아도취에 빠져 있었을 때 중국인들은 기회를 노리며 호시탐탐 건물을 사들였다. 이제 뉴욕과 뉴저지에서 확실한 ‘코리아 타운’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곳은 맨하탄 32가와 뉴저지 팰리세이즈 팍 밖에 남지 않았다. 고구려의 역사가 2000여년이 지난 오늘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교훈이야말로 ‘우리도 한때는 강대국이었다’가 아니고 ‘가진 것을 지키려면 절대 자만하지 말라’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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