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12월, 사람이 흐른다

2006-12-0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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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목회학박사)

12월이다. 세월이 유수같이 빠르다더니 정말 그렇다. 지난 11개월을 어떻게 지냈나. 사람이 만들어 놓은 달력이다. 그러나 그 달력 한 장 한 장 떨어져 나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사람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지 못하는 한계의 존재라는 것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한계 속에서 태어나 그 한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 안. 흘러간 세월의 발자취들이 수놓아 지게 된다.

얼마 안 있으면 사람들은 새 해를 맞는다고 기뻐하며 또 새로운 계획들을 세우겠지. 포부에 찬 결심과 계획을 놓고 “올해엔 반드시 해내고 말거야!”라고 다짐한다. 하지만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이 되고 보면 늘 허탈한 마음을 갖게 된다. 결심과 계획의 결과가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 성과에 대한 기대와 만족보다는 늘 더 반성해야 할 것들이 많이 쌓이는 12월.
흐르는 시간은 붙잡지 못한다. 아니, 시간이 흐르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흐른다. 태어나 유아기를 거치며 유년기에 이어 청소년기와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 그리고 황혼. 그 흐름은 늙는 것이다. 늙어가며 시간이, 세월이 빠르다고 착각하는 것. 시간과 공간은 늘 그대로이다. 사람의 눈과 귀와 몸으로는 시간이 가는 것과 공간이 도는 커다란 굉음은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느낄 수가 없다. 한계성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구가 돌아가고 있는 소리가 사람에게 들린다면 사람의 귀는 모두 터져버리고 만다. 이것이 한계다. 그러나 그 한계는 사람에게 있어 유용한 한계다. 꼭 필요한 한계다. 어쩌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한계의 선은 사람으로 태어나 가질 수밖에 없는 주어진 복이다. 사람이 살아가야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한계점. 그 한계점을 넘을 때 사람은 죽게 된다.
그러나, 사람의 죽음 그 자체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은 아니다. 죽음 뒤에 따르는 것들이 있기에 그렇다. 그것은 인류종말이 있기까지 내려 뻗어나가는 사람의 흐름이다. 사람, 즉 인간의 흐름은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잉어가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듯. 인간, 사람에게만 주어진 한계성 안의 능력이다.

7번 지하철 아래서 수개월째 집이 없이 홈리스로 살아가는 백인 할아버지. 그가 할아버지인지 아저씨인지는 잘 모른다. 제대로 먹지 못해 젊은 사람이 할아버지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 자동차 주차할 곳이 없으면 늘 이용하는 지하철 아래 주차장. 그 곳에 자동차를 세우고 타기를 수 없이 한다. 그 홈리스는 언제가 부터 나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보다.
어떨 때는 서로 눈도 마주친다. 그 눈을 통해 비추이는 느낌. 사람, 즉 인간의 한계 밖 모습이다. 그렇게 눈이 맑고 욕심이 없어 보일 수 없다. 그토록 맑은 눈을 어디에서 볼까. 모든 것을 포기한 그는 모든 욕심을 끊어 버린 것. 사람의 한계가 그를 지배하지 못함을 본다. 쓰레기통을 뒤져 겨우 먹을 것 하나 주어먹으면서 그것으로 만족해하는 그에게 12월이 이 해의 마지막 달인들, 그게 무슨 의미와 소용이 있겠는가.

그는 오늘도 두터운 옷 한 벌 둘둘 말아 입은 채 구부려 잠을 잔다. 모두가 다 방관자이다. 그는 죽을 것이다. 아니 조금씩,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 그가 먹는 것은, 쓰레기통 안의 병균으로 가득한 버린 음식들. 그가 입은 옷은 이와 쥐벼룩으로 범벅. 어떻게 대변을 해결하나. 몸을 씻는 샤워는 아예 생각도 못함. 남녀노소. 그를 지나치는 사람은 수없이 많다. 시간이 흐르듯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주위를 흘러간다. 그러나 모두가 그의, 사람이 가진 한계를 시험하는 것 같다. “언제까지 저렇게 버틸 것인가”라고.자유 그리고 벗어남. 그 홈리스를 통해 진솔한 자유와 인간 한계성의 벗어남을 생각해 볼 수 있을까.

자유는 인간에게 주어진 한계성 안의 가장 큰 선물. 아무도 관심 갖지 아니하게 할 자유.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을 자유. 명예와 돈과 의식주의 걱정과 근심으로부터의 자유. 성과 쾌락으로부터의 자유. 한 개인의 종말이자 사람의 한계를 그어주는 죽음으로부터의 자유. 의미와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 자유하지 못한 자유로부터의 자유.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지 못하는 한계의 존재, 인간이란 개념도 그에겐 아무 의미가 없다.
배를 불릴 수 있는, 먹다 남은 한쪽의 빵과 누워 잠잘 수 있는 조그만 모퉁이. 몸을 따뜻하게 할 수 있는 옷 한 벌. 그것이 그가 가진 자유의 한계 안 능력. 방관자. 수없이 많은 사람이 그의 한계를 보고만 있다.

크리스마스 노래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사람들. 바람과 물결처럼 왔다가는 사람들. 시간과 공간을 벗어보려는 자유 함. 인간에게 주어진 한계성 안 능력의 몸부림. 12월. 사람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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