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개 밥에 도토리

2006-11-3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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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재(전 은행인)

“죽어 잊어야 하랴, 살아 그려야 하랴, 죽어 잊기도 어렵고, 살아 그리기도 어려워라. 저 님아 한 말씀만 하소라 사생결단 하리라”

제목도 알 수 없는 이 시조는 평양 기생 매화가 해주 감사 홍(洪)시유를 몽매간 그리면서 쓴 연애 시인데 ‘저 님’은 바로 대통령 노무현이고 모든 국민과 미국 대통령 부시가 사생결단 외치는 매화가 아닐까 싶다. 물론 국내외에 빨갱이들과 쓸개 빠진 자들은 제외하고서다.


갈 길은 멀고 지친데다 이라크에 발목이 빠진 채 서산에 걸린 해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부시는 엊그제 그다지도 모질고 독한 김정일한테 덜미가 잡혀 궁여지책으로 북핵을 포기하는 댓가로 미-북간 영원한 전쟁 종식을 선포했다. 망나니 김정일에게 명줄이 달려있는 핵을 포기시키는 것은 호랑이 입 속에 고기를 뺏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니 애당초 크게 기대한 건 아니겠지만 미운 X 보기 싫어 목숨 걸고 딱한 사람 구해주면서 자기는 수렁에 빠져 오십년 넘도록 헤어나지 못한 채 못된 싸움꾼이라 욕먹으며 괄시받으니 키 크고 콧대 높아 양키인데 어찌 복장 터지지 않겠는가.

‘전시 작통권 일찌감치 가져가라’고 한 것이나 ‘이 지긋지긋한 수렁에서 빠져 나갈 터이니 너희끼리 잘 해봐라’ 라는 포한(抱恨)의 이 말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댁의 사정”, 거의 다시 안 보겠다는 막말의 수준이다.필자가 놀라는 것은 노파심에서 만이 아니다. 꿩도 먹고 알도 가져야 하는 이유가 꿩을 먹고 나면 잠시만 배가 부를 뿐, 알의 보유는 곧 생명의 보장이기 때문에 개망나니 김정일이 핵을 포기하는 일은 죽은 김일성이 기지개 하고 다시 살아나도 없을 것이다.

만에 하나, 유야무야한 6자회담을 빌미로 갈 길 바빠 배고픈 X 장기 두듯 하는 부시에게 이런 조건, 저런 단서로 미-북간 종전(終戰)을 합의하면 비록 핵 포기의 조건부이긴 하지만 개망나니 부자(父子) 50년 동안 절치부심 적화통일을 노렸는데 미군 철수라면 언감생심 바랬던 바(不敢請
固所願)아닌가. 그렇게 되면 남한은 개밥에 도토리요, 금수강산이 적색강산 되는 것은 시간문제로서 언제고, 어디서고 미군 철수 뒷자리는 공산화 된 것이 얄타회담의 약속을 무시한 폴란드의 공산화, 월남의 공산화, 6.25 남침 등으로 공산당의 교활함과 기만성은 증명된다.

모두가 기계로 찍어낸 듯 미군 철수 뒤에 일어난 일들이다. 물론 미국이 약방에 감초 끼듯 진 곳, 마른 곳 간섭하고 감 놔라, 배 놔라 패권주의적 행패도 없지 않았기에 내당 마님같이 얌전하고 순수한 학구파인 언어학자 촘스키(Chomsky) 같은 사람도 “미국이 질서와 안정에 관한 자신만의 개념을 세계에 강요한다”고 자신의 조국을 향해 쓴소리를 하지만 그 역시 붉은 망토를 걸친 뒤부터 하는 소리라 귀여겨 들을 필요는 없다. 단 6.25의 경우,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의 종족을 위해 5,6만명의 귀한 생명을 희생시키면서 포악한 공산당의 침략을 막고 자유민주주의를 굳건히 지켜줬는데 이제 와서 내 배 부르고, 등 따숩다고 생명의 은혜를 배신으로 갚는다는 것은 하늘도 용서 않을 것이다.

미국이 예쁘거나 힘이 세니 사대(事大)하라는 것이 아니다. 말 못하는 짐승도 은혜를 갚는데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랴.옛 말에 <남에게 밥을 얻어 먹었으면 그 사람을 위해 목숨이라도 바쳐야 한다(食人之食者死人
之事)>고 했다. 부시가 천하장사라 해도 발목과 덜미가 잡힌데다 이란마저 몽둥이 들고 옆에서 설친다. 이래도 노무현은 강 건너 불이요, 김대중과 귓속말을 주고 받은데 그 꿍꿍이 속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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