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젊은 두 여전도사와의 대화

2006-11-2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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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옥(전 고교 역사 교사)

화창한 늦가을, 마지막 남은 낙엽을 긁어 모으려 집을 나서려 할 때쯤 초인종이 울린다. 열린 문 앞에 젊은 두 여인이 서 있다.
“여호와의 증인 교회에서 전도를 위해 왔어요. 말을 나눌 수 있을까요?”
이곳으로 이사온 지 1년 남짓해 몇 차례 경험한 지라 망설였지만 주제야 어쨌든 미인들과 얘기를 나눈다는 것이 불쾌한 일만도 아니어서 낙엽 줍는 일을 잊기로 했다.

“하느님의 존재를 믿습니까?” 그런 질문을 할 줄 알았다. “히브리유 계통의 교인들이 말하는 신은 너무도 위대한 존재여서 내 능력으로는 상상 조차 할 수 없어요. 신이란 이름을 너무 남용하고 그의 존재를 입증하려는 인간의 노력 자체가 신을 모독하는 행위가 아니겠어요. 그래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기독교 교리에 가까이 다가서는가를 가끔 생각해 보지요” 미리 준비해 두었던 대답이다.“교회를 나가시지 않는 것 같이 보이네요” 또 그런 말을 할 줄 알았다.


“제가 사는 한 블럭 안에 한인교회가 열하나에 절이 하나 있습니다. 교회 하나 더 만들려고 내 집을 사려는 사람까지 있어요. 기독교인으로 불려지는 것이 부끄러워 안 나가지만 주위의 많은 한글교회 간판 쳐다보고 사는 것만으로도 교회 나가는 것 못지 않아요. 대신 가정을 따뜻하게 해주고 우정을 기리며 이웃을 생각하는 자신의 시간을 가지려 노력한답니다”
“그런 삶이 인간을 영원히 살 수 있는 곳으로 인도해 주지 않아요.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써 가능하죠” “기독교인들이 즐겨 말하는 그런 삶의 진리를 확인하려는 어리석음에서 풀려난 자신의 능력에 긍지를 느껴요. 하늘나라에서도 기뻐하겠지요. 부유해지기 위해 건강을 해치지 않을 정도로 일하고, 이루어진 부유 속에서도 가극 ‘돈죠바니’의 주인공처럼 방탕치 않음이 내가 믿는 영원 불멸입니다.

앞에 보이는 교회 사람은 봄에 꽃 심고, 가을에 낙엽 치우고 건물 주위에 쓰레기 줍는 일 없어요. 그들은 신이 준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감성을 저버리고 사는 불쌍한 사람들 아니겠어요. 그들은 그렇다 해도 이렇게 시간을 보냄으로 해서 애인이나 남편, 부모 자식들이 홀로 갖게 될 무의미한 시간을 생각해 보세요. 남의 어려움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 종교겠지요”“그러나 전도활동을 함으로써 신에 봉사하는 것은 교인으로서의 의무이지요” 내 말은 이랬다.

“신에 대한 봉사니 영광 돌린다는 구어는 인류의 진화가 미숙했던 시기에 고된 일 피하려는 사람들이 대리석 건물 안에서 지어낸 것일 뿐, 인간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하늘로부터의 게시 같은 것은 없었다고 생각되요. 신의 어느 몸 부분을 연구해서 박사가 되었는지도 우습지만 신학박사들처럼 신을 설명하기에 힘쓰기 보다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아가는 생활인의 철학이 더 중요하다 생각돼요”

얘기를 이만 끝내고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는 그들을 그냥 보내고 싶지 않았다. 설교를 듣기 위해 보낸 시간의 10분의 1도 소비할 의향이 없는 두 선교사를 밀다시피 해 집안으로 들였다. 시인의 자세로 살아가는 내 생활 모습을 꼭 보여주고 싶어서였다.“이 방에는 사진이 많이 걸려있지요. 중앙에 걸린 저 사진 속의 가족들은 내 행복의 원천이고 여기 대통령 부부 사진은 저의 정치신념을 말해주고 영국 공주와 찍은 이 사진에서 저의 직업을 알 수 있고, 수집품에서 저의 취미를 읽을 수 있고 한국 고전가구들은 저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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