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혼돈 속에 길이 보인다

2006-11-2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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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요즈음은 만나는 사람마다 하는 말이 먹고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한다. 실제로 모든 공과금과 물가가 너무 올라 살아내기가 쉽지 않다. 몇 해 전 까지만 해도 그 풍성하던 경기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갈수록 찬 기운만 느껴진다.

크게 보자면 나라가 국민들로부터 받은 세금을 전쟁의 군비로 날린 게 주원인이다. 게다가 휘발유 값 인상에다 생활패턴이 옛날과 다르게 더 고급스러워지고 소비지출이 너무 과다해지다 보니 카드 빚만 자꾸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생활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의 재정뿐만 아니라 연방정부의 적자폭이 누적되면서 지방, 시, 주정부로 오
는 기금이 모두 삭감되고 그러다 보니 시나 주정부에서 이를 확충하기 위해 각종 티켓이나 세를 서민들에게 부담지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가게수입은 과거 한 블락 내에 하나 있던 한인 주종업종의 청과 및 델리, 그리고 네일과 세탁소, 식당 등이 한 블락에 두, 세 개로 늘어나면서 오히려 수입은 예전보다 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연말연시를 전후해 한인이 많이 하는 잔칫집이나 연회장의 파티손님 까지도 나눠 먹기식으로 과잉경쟁, 이로 인한 연쇄반응으로 실업자가 나오고 고소득자가 잡을 잃으며 더 많은 서류 미비자들이 설 땅을 잃고 있다.
몇 해 전만 해도 갤런 당 1달러 하던 가솔린 값이 지금은 2달러 50전으로 폭등, 유가상승으로 오는 연쇄반응으로 고속도로 상의 톨 비까지 오르는 바람에 이제는 웬만큼 특별한 일 아니고서는 다리 건너 어딜 간다는 생각은 엄두조차 내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서로 안가고 안 먹고 웬만한 건 자기 지역에서 다 해결하고 만다.

그러나 이미 몸에 밴 소비패턴은 아무리 어려워도 해오던 생활자체를 바꿔놓기가 어렵다. 옛날 같으면 구두 한 켤레, 옷 몇 벌이면 되던 것이 이제는 누구나 할 것 없이 구두고 옷이고 집의 옷장이나 신발장에 넘쳐나도록 사 입고 사 신고 해야 하는 것이 문제이다. 집집마다 자동차도 한, 두 대, 아니면 어떤 집은 식구마다 다 있다. 말하자면 벌어들이는 수입은 갈수록 적어지는데 지출은 오히려 더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가계는 더욱 어려워져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기도 쉽지 않다.
더욱이 우리생활을 힘들게 하는 것은 외상으로 우선 살 수 있는 편리함 때문에 쉽게 남발한 크레딧 카드에 먼지처럼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는 빚이다. 이를 견디다 못한 사람들 가운데는 귀중한 목숨을 끊는 사태까지 생겨나고 있다. 살기가 그만큼 힘이 든다는 이야기다.

어떻게 하면 우리생활이 나아질 수 있을까? 앞으로는 좀 괜찮을까? 우리에게 희망은 있지만 때로 고민이 더 많다. 왜 이렇게 어려울까? 될까, 안될까? 예전에는 ‘소비가 미덕’이라 했는데 이제는 ‘저축이 미덕’이라고 해야 할 런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날씨가 추워지니 마음마저 을씨년스럽다. 새해 들어 시작은 ‘좀 낫게 살아야지’ 하며 출발했는데 연말이 되어 정산을 해보니 도무지 나아진 것이 없다. 아니 오히려 몇 년 전 보다 더 못하다는 느낌이다. 이것이 고민이요, 혼돈이다. 새해 초 마음먹고 했던 계획이 일 년이 되어도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없다면 헛산 것이 아닌가. 그리고 마무리해야 할 연말에 ‘나쁘다’ ‘잘못됐다’ 푸념만 하고 있다면 이는 분명 잘 산 생이라고 할 수 없다.

어렵고 힘든 상황일수록 우리가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는 강한 믿음과 희망, 도전정신이다. 우리에게 만일 희망이 없다면 살 이유가 있을까. 희망은 오히려 혼돈 속에서 생겨나는 법이다. 그래서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듯, 아무리 어려워도 길은 있게 마련이다. 이번 연말에는 특히 경기가 더 어려워 절망하고 있는 한인들이 많다고 한다. 이런 어려움은 단지 어떻게 헤어날까 혼돈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싶다.

한인들 중에는 물론 아무리 경기가 나빠도 그 속에서 되는 사람은 된다. 그들은 절대 경기가 어떻다 운운하지 않는 부류이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정월이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새 12월이 성큼 다가왔다. 한 달만 지나면 또 한 해가 온다. 해마다 이맘때만 되면 어김없이 세월 탓을 하면서 마음이 착잡해 지는데 여기다 더한 것은 삶에 대한 고민과 걱정이다. 다음해 이맘때는 어떻게 하면 후회하지 않고 걱정하지 않고 착잡해 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고 진단해 보고 하는 것은 다가오는 또 한 해를 위한 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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