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는 感나무를 심고 싶다

2006-11-28 (화)
크게 작게
정춘석(뉴욕 그리스도의교회 목사)

빠르게 현상이 변하는 사회 속에 살다 보니 어지간한 일로 감동하는 법이 없다. 이민의 삶이 잠시도 한눈 팔 수도 없는 쫓기는 생활이라서 감동은 사치같이 느낄 수도 있다.이제 사람을 감동시키자면 많은 비용이 들고, 문학적 표현 조차 격렬한 표현 방법을 쓰지 않으면 아예 읽지도, 읽히지도 않는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말의 기교가 살아있지 않으면 영화의 재
미는 떨어지고 관객 동원 또한 실패한다. 영상미는 고전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우리 가운데 감동 ‘거리’가 적어서일까? 아니면 너무 좋은 것이 많아서일까? 웬만한 것에는 아예 감동 파동이 일어나지 않는다. 어쩌다 광적인 감격은 해도 잔잔한 감동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무덤덤한 채 올해를 그저 보내서는 안된다. 월드컵의 승리 함성 같은 감동은 없어도 자라나는 아이를 보면서 이메일 한 통을 열어보면서 잔잔히 다가오는 그런 감동도 좋다. 신나고 박장대소하는 일이 아니라 해도 혼자서 슬며시 웃음짓게 하는 작은 감동이 있으면 좋겠다.그래서 나는 이 가을에 感나무를 하나 심고 싶다.


가진 것도 없고, 이뤄낸 것도 없지만 ‘나의 하나님’이 되어주시니 감동! 여전히 주 뜻대로 사는 일에 실패하지만 끝까지 ‘나의 하나님’ 되심을 기뻐하시니 감격! 계속해서 ‘나의 하나님’ 되어 주시겠다고 보장해 주시니 감사!라고 생각했던 그 순간들을 이민사회에 열리도록 한
그루를 심고 싶다. 뿐만 아니라 감화(感化), 감명(感銘), 감흥(感興), 감격(感激)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도록 말이다.사람은 감격과 감동을 먹고 사는 동물이다. 감을 갖는다는 것은 먼저 잠시의 여유를 가져야 한
다. 바쁜 일과 속에서도 푸른 하늘을 쳐다보고 하나님은 잎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애타하는 나무도 보면서 생각을 해 보는 것이다.

감동은 느끼고 행동하는 것이다. 지나간 일들 속에서 감동되었던 순간들을 잠시 꺼내어 보는 것도 좋다. 가슴이 찡하고, 뭉클했던 그 때를 오늘로 가져와 보는 것이다. 처음 만났던 그 순간, 고백했던 그 날, 가슴 터지라 외치고 싶었던 그 날이 또 다시 다가온다는 믿음을 가져보는 것
이다.나를 위한 감동을 찾는 것 보다 남에게 감동을 주려는 일도 우리로 하여금 같은 감동에 빠지게 한다. 하나 하나 떨어진 낙엽을 보면서 누군가가 찾아오길 기다리는 이 가을에 마음을 주는 일을 찾아보아야 한다.

감동은 메마른 우리 뇌에, 마음에, 몸에 촉촉한 자양분이 되어 준다. 감동의 순간을 생각하면 무엇보다 기분이 좋다. 가벼운 흥분, 머리의 맑아짐과 가뿐함, 건강에 이보다 더 좋은 약은 없다. 감동을 잃어버린 사회 같은 우리들 삶 속에서 다시 감동을 되찾아야 한다. 작은 일에도 감
격하는 사람이 많아질 때 사회관계가 부드러워지고 사람 사이에 용서와 화해라는 거래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感나무는 홀로 크지 아니한다. 때에 따라 거름도 주고 물도 주어야 한다. 나만 따먹고 말겠다는 사고가 아니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따 먹을 수 있는 귀한 나무로 키워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도록 해야 한다. 감동을 기다리지 말고, 감동의 물결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감사가
그 첫 시작이다.범사에 감사할 때 넘쳐오는 감동과 감격이 있다. 이제 보여지는 부분 보다는 보여지지 아니하는 곳이 더 많을지라도 感나무가 튼튼하고 강하게 자라도록 온 힘을 다하여야 한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