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또 다른 궤변

2006-11-1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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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일(취재1부 기획취재부장)

한국정부가 15일 처음으로 유엔의 북한 인권결의안에 ‘찬성’ 표를 행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한국 정부는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유엔 인권위에서 세 차례, 총회에서 한 차례 북한 인권결의가 국제사회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채택되는 동안 표결에 한 차례 불참했고 3차례 기권했다.

정부는 그 동안 소위 대북 ‘화해 협력’을 내세워 “북한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논리로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 기권 또는 불참 입장을 변명해 왔다.그러던 정부가 올해 유럽연합과 미국, 일본 등이 앞장서 유엔 총회 제3위원회 제출돼 17일 오전 표결에 부쳐질 북한 인권결의안에 ‘찬성’ 한다고 입장을 바꾼 것이다.물론 뒤 늦게라도 그 동안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아가면서도 고집을 피우던 잘못된 입장을 바로 고쳤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그러나 정부가 이 같이 입장을 바꾼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괴변을 늘어놓은 잘못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내 언론 보도들에 따르면 정부 당국자가 “북한이 핵실험을 한 마당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할 수는 없지 않느냐”면서 “실질적으로 긴장이 조성되는 일이라면 신중해야겠지만 이 문제는 명분상의 문제”라고 말했다.이는 유엔의 북한 인권 결의안을 실질적으로 북한의 인권 개선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북한의 핵 실험 등에 대한 압박으로 착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발언이다.
또 북한 인권 결의안이 실질적으로 긴장이 조성되는 일이 아니고 단순한 명분상의 문제였다면 지금까지 표결에서 한 차례 불참하고 3차례에 걸쳐 기권한 정부의 입장에 일괄성이 없음을 자인하는 말로 오히려 혼돈을 야기 시킨다.

특히 이번에 상정된 대북인권결의안은 지난해 채택된 결의와 마찬가지로 북한 인권문제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는 동시에 북한 인권 실태에 대한 포괄적인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사무총장에게 요청하고 있어 지금까지 한국 정부의 외교 총수로서 정부의 입장을 외국에 설득해온 반기문 차기 유엔사무총장이 내년 유엔 총회에 포괄적인 보고서를 제출하는데 있어 난처한 입장에 처 할 수 있는 설명이다.

만일 정부가 올해 기존의 방침을 바꿔 ‘찬성’입장으로 선회한 것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선출과 정부의 초대 유엔인권이사국 진출, 한국인의 유엔 인권 부고등판무관 진출 등을 다각적으로 고려한 결과였다면 차라리 최소한 북한 인권문제에 있어 지금까지의 잘못된 대북 정책을 인정하고 앞으로 국제사회의 흐름에 준수한 올바른 대북 정책을 수행해 나가기 위해서 였다는 솔직한 발표를 현 정권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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