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짧은 시간에 오고 간 생각들

2006-11-2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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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란(베이사이드)

오늘 새벽 출근길에 죽을 뻔 하였다.
토요일 아침의 상쾌한 아침공기에 감사하며 좋아하는 복음성가를 들으며 시간도 여유 있음을 느끼며 차창 밖의 스치는 가을바다의 고요함도 음미하며 천천히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앞 차가 차선을 잘못 들었는지 출구 바로 옆 중간차선에서 삐딱하게 급정거를 해버린 것이다.순식간에 옆 차선으로 핸들을 돌렸으나 차의 진동을 심하게 느끼며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크락숀을 누르며 그 자리를 피했다.

단 몇초 사이에 이승과 저승을 오락가락하며 고속도로 선상에서 급정거를 한 검은색 링컨 컨티넨탈 드라이버에게는 아무런 야단도 할 수 없는채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새벽길을 그대로 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간, 그 때 내 옆 차선에 차가 있었다면 나는 가해자가 되고 아무 죄없는 남의 차를 들이박고야 말았을 것이다. 다시 한번 내 인생의 연약함과 덧없음, 그리고 무상함을 통탄하며 2년 전에 겪었던 교통사고를 떠올려 본다.


뉴저지 친구집에서의 모임을 마치고 웬일인지 조지 워싱턴 브릿지가 꽉 막혀 우회하여 링컨터널을 지나 맨하탄에 진입하여 10 애비뉴 교차로에서 신호등이 깜빡거리고 있어 악셀을 밟고 있었다. 그 순간 꽝 하는 진동을 느끼고 한 3초 사이에 내 차, 닛산 Exterra는 교차로에서 한바퀴 회전하고는 옆으로 전복하고 말았다.
땅을 옆으로 하고 순간 ‘퍽’하는 소리를 내며 우수수 쏟아져내리는 유리 파편 세례 속에서 한순간 정신을 잃으며 스치는 생각은 “아니, 왜 내게 이런 일이... 늘 내 마음 속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던 두려움이 이것이었던가. 내 몸은 어디까지 다친 것일까? 간밤 모임에서 맥주 한
잔 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다.

시간은 새벽 한시 반, 핸드폰은 어디에 있을까? 911을 불러야 할텐데... 엔진을 꺼야 할텐데... 누구한테 도움을 구해야 할까? 어떡하지...? 침착하게 잘 처리해야 할텐데... 하나님 도와주세요.
아직 갈 준비가 덜 됐는데요. 좀 더 사랑하고 전도하고 미워했던 사람들 용서하고 그럴 시간을 주시면 안될까요?”
그 짧은 시간에 그렇게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가며 48년이란 짧은 인생에 내가 오판했던 수많은 결정들, 오해했던 수많은 편견들, 사람을 정죄하는 나쁜 성격, 조급함, 조금 더 열심히 살아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마구 교차했다.

다행히 누군가의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옆 창문으로 사람들에 의해 끌어올려졌고 앰블런스가 올 때까지 어떤 백인 아주머니가 같이 있어주었다.그 와중에도 웬 흑인이 내 차를 뒤져서 흩어진 동전을 줍고 있었고 입속에 들어간 유리가루가 맘에 걸려 소리 조차 지르지 못하고 망연자실했었던 그 밤이 기억난다.이 짧은 인생이 왜 이렇게 고단하고 순탄치 않은 것일까. 생각하면 쿨하게 멋있게 살고 싶어서, 아니 남들이 볼 때 ‘잘 살아내고 있구나’ 이 말을 듣고 싶어서 속내를 감추며 울고싶은 얼굴을 무표정으로 위장한 채 눈썹이 휘날리도록 살아온 것이 아니었을까.

상처받기 쉬운 마음을 혹여 남이 엿볼새라 마음의 문을 꼭꼭 닫고 이기심으로 살아온 세월들. 강한 척 해보려고 내뱉었던 가시돋친 언어들, 나를 방어하고자 남의 마음에 상처를 내며 무장한 전사처럼 마구 휘둘렀던 칼들, 모두 용서해 주기 바란다.나를 상처내었던 사람들도 오늘밤 모두 용서해 주고 싶다.마치 마지막 유언을 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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