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동양인의 얼굴

2006-11-1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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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선(하-버그룹 수석부사장)

4년 전, 9.11 이후에 국경 경비가 강화된 것이 사실이겠지만 그 테러사건이 있기 이전 캐나다를 왕복하는 일은 마치 어느 주의 경계를 건너다니는 것과도 같이 전혀 부담 조차 느끼지 않는 일이었다. 운전면허증만 있어도 되고, 또 어느 때는 그것마저 보일 필요도 없이 그냥 통과하면서 국경을 넘나들었던 때였다.

물론 9.11 훨씬 전, 캐나다에 회사 일로 자주 왕래할 때의 일이 지금도 생생하다. 하루나 이틀 동안의 일을 마치고 몬트리얼 공항을 통해서 뉴욕으로 돌아오곤 할 때다. 캐나다에서 국경을 통과할 때는 공항에서 미국 이민국을 거치게 된다. 동행하는 미국인 동료나 직원들과 같이 이민국을 지날 때면 다른 사람들은 얼굴만 쳐다보고 통과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한테는 빠지지 않고 꼭 물어본다.


미국 어디에 사느냐, 며칠 있다 가느냐, 또 어떤 때는 운전면허증을 보자고도 한다. 먼저 통과한 직원들은 멀리서 민망한 듯(?) 이쪽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나를 기다려 준다. 이민국 직원들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겠지만 나에게는 어딘가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든다. 불유쾌해지기도 한다. 미국인들과의 차별감을 느끼게 만든다.
혹시 내가 수상쩍게 생긴 인상인가? 아니면 몹시 조급해 보였나 생각도 해 보지만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런 것은 아닌데 번번히 느꼈던 것은 분명히 내 생긴 얼굴 때문이라는 나의 판단이었다. 동양인의 얼굴이 그들로 하여금 나를 의심쩍게 만들었거나 아니면 한번쯤 짚어보고 보내야 하겠다는 동양인에 대한 미국인의 우월감을 발동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누구였던간에 내 얼굴이 백인의 얼굴이었다면 나에게 궂이 물어보지도 않았을 것이고 운전면허증을 보여달라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영어를 한 마디 못하더라도 서양인의 얼굴을 가졌더라면 그냥 통과시켰을런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비록 시민권을 가진 미국 시민일지라도 길을 걸어가면서 다른 미국사람들이 나를 볼 때에 분명 외국인이라고 볼 것이다. 내 생긴 얼굴이 동양사람이니까. 내가 미국 시민일지라도 내가 한국에 가면 분명 나를 내국인이라 볼 것임에는 틀림 없을 것이다. 이들의 판단은 그들에게 보이는 내 동양인의 얼굴로 말미암아 결정되어질 것이다. 나는 이 묘한 틈바구니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혹시 이것은 오직 동양사람 이민 1세만이 느끼는 쓸쓸한 아쉬움일까? 아니면말 못할 설움일까?

하루종일 미국사람들 하고 같이 일하고 생활하면서 그네들의 얼굴만 보며 지내다 보면 나고 그들 중의 하나이거니 생각하며 하루를 보내게 된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으면서 거울을 볼 때에야 비로소 나는 동양사람이구나 하며 내가 나를 찾게 된다.
우리도 또 미국사람들도 모두가 거리낌 없이 이야기 하기를 우리는 동등하고 인종차별도 없다고 큰소리로 외친다. 자기만 잘 되고 성공하면 누구한테도 차별대우를 받지 않는다고 서슴치 않게, 또 당당하게 말들을 한다.

과연 우리 우리 이민 1세들의 오늘의 현주소가 그러한지 의심스럽다. 우리 2세들의 생각은 적어도 우리와는 다르다. 2세들은 우리가 느끼는 것들에 덜 민감하거나 아니면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아주 떳떳하게 사는 것 같다. 그들이 장하다. 이곳 주류사회의 한 사람으로 당당하게 사는 모습이 참 멋지다. 우리보다 훨씬 나은 삶을, 더 풍요한 삶을 영위할 것에는 틀림없다.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양사람을 ‘오리엔탈’이라고 부르던 이들이 이제는 차츰 ‘에이시언’이라고 부르려고 애쓰는 것만 보더라도 시대는 급속히 변하고 있다. 우리 이민 2세, 3세들의 시대는 분명히 밝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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