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엘리자벳에게서 온 전화

2006-11-1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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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희(뉴욕시 교육청 학부모 조정관)

얼마 전 저녁을 막 먹고 앉았는데 셀폰이 울려서 받아보니 “선생님, 안녕하세요” 해서 “누구세요?” 했더니 엘리자벳이라고 한다. 나는 놀래서 “아니, 우리 학교 다니던 너 엘리자벳이니?” 했더니 그렇다고 해서 너무 놀랍고 반가워서 눈물이 나올 뻔했다. 아니 얘가 나한테 직접 전화를 하다니, 그것도 유창한 한국말로...

이 학생과 처음 만난 것은 2년 전인데 어느 날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소셜워커인 S가 이 학생을 도와주려고 해도 전혀 입을 열지 않아서 이 학교에서는 교육할 수가 없으니 다른 학교로 전학시키는 절차를 취하도록 부모에게 전화를 해달라고 한다. 그래서 친절한 한국어로 아무리 말을 시켜보고 무슨 말을 물어봐도 그 학생은 까만 눈동자로 바라볼 뿐 열릴 듯 열릴 듯 입 언저리만 움직이지 말문을 열지 못했다.


내 판단으로 이렇게 언어 장애가 있을 경우 한국인이 내가 있는 학교에서 보살펴주고 힘이 되어주면 꼭 회복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한국학생이니 내가 책임지고 돕겠다고 한참을 변론해서 전학시키는 계획을 포기하게 했다. 그녀의 어머니와 상담 결과 집에서는 할머니를 비롯한 모든 가족과의 대화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타인과는 말문을 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뒤로 항상 복도에서 그녀를 만날 때마다 아는 척하고 지날 때마다 괜히 참 똑똑하다고, 예쁘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칭찬을 해 주고 해도 맑은 눈으로 나만 그저 바라볼 뿐 전혀 무응답이었다.

학교에서 계속 카운슬링을 받고 지난 9월에는 하이스쿨로 진학한 것을 학기 초 어머니가 스쿨버스 문제로 네게 전화로 문의해서 알았는데 바로 그 아이에게 전화를 받은 것이다.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관찰하면 공부 잘 하는 학생, 중간으로 따라가는 학생, 공부 못해서 항상 여름에 섬머스쿨을 다녀야 하는 학생, 지각과 결석을 밥먹듯 하는 학생, 조용히 자기 책임을 다하는 학생, 처음부터 졸업 때까지 부모님이 불려다녀야 하는 학생 등 아주 다양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부모가 끝까지 관심을 갖고 인내로 참고 그 자녀를 포기하지 않으면 꼭 그 자녀가 성공적인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다.

엘리자벳에게 “커서 뭐가 되고 싶으니” 하고 물으니 태권도 사범이 되는 게 꿈이라고 해서 “너의 꿈대로 꼭 될거야! 너는 꼭 할 수 있어”라고 격려해 주니 “감사 합니다!” 한다.
모범생인 자녀들이나 말썽꾸러기 자녀들이나 부모가 자녀들에 대해 미래에 확신을 갖고 꾸준히 노력하면 분명히 훌륭한 시민으로 성장하여 부모의 자랑이 되는 그런 사람이 될 줄 확신한다. 평생 했던 천직 보석 디자이너 때보다 훨씬 보수는 적지만 공무원으로 모든 사람을 도울 수 있
는 위치에서 일하게 된 것을 늘 하나님께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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