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비명횡사

2006-11-0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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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사람이 살다 세상을 떠나는 데에는 세 가지 형태로 분류된다. 하나는 자연사이고 또 하나는 병사,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사건이나 사고를 동반한 비명횡사이다.자연사라고 하는 것은 나이가 들어 자동적으로 늙어 죽는 경우이고 병사는 말 그대로 몸에 병이 들어죽는 경우이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예기치 않은 사건이나 사고에 의해 목숨을 잃는 경우, 이것은 비명횡사이다. 이 가운데 자연사와 병사는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가 없지만 멀쩡하게 잘 살다 하루아침에 아무런 이유 없이 사건이나 사고를 당해 죽는 것은 너무나 억울한 일이다.

비명횡사란 길을 가다 자동차에 변을 당한다든지, 교통사고에 의해, 또는 수영장이나 맨홀에 빠져, 아니면 길을 가다 위에서 무슨 물체가 떨어져, 또는 남을 구하러 뛰어들었다가, 아니면 불이 나서 빠져나오지 못해, 혹은 폭행이나 총, 칼에 의해 아까운 목숨을 잃는다든지 하는 것들이
다. 미국까지 와서 우리가 아메리칸 드림을 목표로 허우적거리며 열심히 살다가 아무런 죄 없이 목숨을 잃는다는 것은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다. 특히 한인들의 경우, 사소한 시비 하나로 아까운 목숨을 흑인들에게 빼앗기는 예가 많다. 얼마 전 가게에서 흑인손님으로부터 말다툼 끝에 폭행
을 당해 죽은 60대 한인남성의 죽음, 그 것은 정말로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한인들이 흑인들로부터 폭행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것은 흑인들이 평소 한인을 원망하고 증오한 결과이다. 그들은 한인이 자기들의 잡을 다 빼앗아 갔다고 생각한다. 또 자기네 동네에 와서 돈을 벌고도 환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동네에 아침이면 좋은 차타고 와서 돈만 벌고 , 또 밤이면 좋은 차를 타고 다시 다른
동네로 가버린다고 생각한다. 이런 불만이 하루 이틀 쌓이다 보니 흑인들은 자연 마이노리티를 미워하고 그 것이 마침내는 원망까지 간 것이다.
흑인들은 특히 ”동양에서 온 이민자들, 히스패닉 계들 때문에 우리가 고통을 당한다“며 ”왜 마이노리티 이민을 받았는가?“ 라고 항변하고 있다. 마이노리티 때문에 우리가 가져야 할 잡도 없고 우리 동네에다 가게차려 돈 벌고 저희들만 잘 산다며 불만이 팽배하다. 이것이 수년간
이어지다 보니 이제 그들도 알 것은 다 알았다.

이따금 흑인들이 피켓 들고 데모하는 이유는 무슨 커다란 잘못 때문이 아니라 우리 한국인의 경우 다는 아니지만 어느 면에서 그들로부터 증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래서 장사하다 문제가 생기면 평소 자기네들 끼리 오고 가던 감정이 폭발되면서 그 피해는 엉뚱하게 한국인이 당한다. 그러니까 돈을 벌면 그들을 위해 환원도 할 줄 알고, 흑인들이 가게
에 들어오면 도둑 취급을 하지 말고 인간으로서의 대우를 잘 해주어야 한다. 실제로 한인들은 백인이 들어오면 아무렇지 않게 보다가도 흑인이 들어오면 동양인 특유의 째진 눈으로 혹시나 무얼 훔쳐 가지 않을까 노려본다. 인간은 모든 것이 인지상정이다. 때문에 기분 나쁜 건 나쁜 것이다.
유엔 대사를 지냈던 조지아 주의 흑인 앤드류 영이 “한국인이 우리 돈을 다 착취해서 저희들만 잘 산다.

한국가게 가서 물건을 사지 말라”고 해서 한동안 시끄러웠다. 그러나 그는 정치인이기 때문에 그 말에 대한 사과는 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 것에 만족할 게 아니라 그가 한 말을 잘 해석하고 분석하고 귀담아 들어야 한다. 그 것이 흑인 사회에 나도는 한인에 대한 평가다.우리는 흑인보다 한참 늦게 온 이민자들이다. 그런데도 이만큼 자유를 누리고 거리낌 없이 살고 있는 것은 그동안 흑인들이 피 흘려서 쟁취하기 위해 애썼던 그 민권운동 덕분이다. 그러니까 흑인들을 얕잡아 보거나 무시하거나 낮게 볼 것이 아니라 그들을 한 인격체로 존중해 주어야 한다.

우리가 미국에서 이만큼 혜택을 받고 좋은 터전에서 잘 살고 있는 것은 한마디로 그들이 닦아놓은 희생과 노력의 결과다.
우리나라 속담에 굴러 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는 말이 있다. 한국에서 자주 입에 올리던 이 말은 미국에서 사는 우리한테 아주 적합한 속담이다. 우리는 미국에 굴러들어온 돌이다. 그리고 흑인들은 박힌 돌이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은 이 속담을 곱씹어 보면 그 안에 해답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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