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자나 깨나 차조심

2006-11-0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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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혜(취재2부 문화,경제특집부장)

요즘 들어 뺑소니 차량에 의한 한인 사망·사고가 연일 신문을 장식하고 있다.피해자 대부분은 새벽길이나 밤길에 일을 당해 사고를 낸 가해자는 물론이고 목격자도 찾기 힘든 상황이다. 낯선 미국 땅에서 힘들게 살다 객사(?)한 피해자들과 유족에 진심으로 조의를 표하면서 사람을 치고도 줄행랑을 친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강심장일까 자못 궁금하다.

한 사람의 소중한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가고 피해자 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뺑소니 운전자들이 이 미국 땅에서 발 뻗고 편히 잘 수 없도록 해야 하는데....
무엇보다 뺑소니 사고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고 있으니 길에 나서기가 무서울 정도다.뺑소니 운전자들은 과속 운전이나 음주운전, 불법 체류 상태에서의 무면허 운전 등의 과실을 저지른 후 가중처벌이나 추방이 두려워 도주했을 가능성이 짐작되는데 경찰에 따르면 확실한 목격자가 나타나지 않은 이상 뺑소니 운전자를 잡기가 어렵다고 하니 참으로 걱정이다.


지난 연말 뉴욕에서 작업하던 한 한인 화가는 음주운전자가 몰던 차에 치여 서른 37세란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었고 가해자는 사고 직후 도주하다 경찰에 체포됐다.
2001년 뉴욕으로 와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회화작업에 전념했던 이 화가는 개인전을 바로 눈앞에 둔 상황에서 사고를 당해 결국 그의 개인전은 유작전이 되고 말았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1여년이란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우연히 그의 파일을 들춰보다 3년 전에 그가 보낸 개인전 초대 엽서를 발견, 마음이 아팠다.

앞쪽에는 항아리에 꽃이 소담스럽게 담긴 그의 정물그림이 있고 뒤에는 개인전에 꼭 와달라는 내용이 적힌 엽서였다.뺑소니 운전자에 대한 처벌규정을 강화한다 해도 체포가 어려우면 ‘일단 사람을 치면 도망 가보자는 식’의 나쁜 심리가 만연해 질 수 있기에 뺑소니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효율적인 제도장치가 하루 빨리 마련됐으면 한다.

현재로서는 목격자들의 적극적인 신고가 뺑소니 운전자를 체포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인 것 같다.또 건널목을 지날 때 사방을 둘러보고 주위를 살피고 노인들은 특히 어두울 때는 가급적 길을 나서지 않는 등 스스로 안전을 지키는 것이 뺑소니 사고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최상의 방법인 것 같다.

주차된 남의 차를 들이 받은 후 차 앞 유리에 미안하다는 사과의 글과 함께 자신의 연락처를 남겨 놓는 매너가 이곳 미국사회에도 언제부턴가 사라진 것 같다.접촉사고를 내고도 무조건 상대방 과실임을 주장하고 길가에 세워진 남의 차를 파손시킨 후 줄행랑치는 비양심적인 운전자들을 우리 주변에서 너무 쉽게 접할 수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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