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소서노 연정(戀情)

2006-11-0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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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권(한민족포럼재단 국장)

나는 요즘 한 여인에 대한 연정에 사로잡혀 있다. 하지만 짝사랑. 내 맘을 송두리째 차지하고 있지만 만나보지 못하는 애달픔에 가슴이 시리다.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인터넷과 책들을 뒤적이며 그녀 관련 글을 읽어보지만 알면 알수록 그녀에 대한 동경심은 커져만 가니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이름 소서노(召西奴), 2070년 전인 서기전 66년에 태어나 서기전 6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 졸본(卒本) 연타발의 딸로서 북부여 왕 해부루의 서손(庶孫)인 우태와 혼인하여 비류와 온조를 낳음. 우태가 죽은뒤 졸본에서 과부로 살다가 부여에서 이곳으로 도망해 온 주몽과 재혼, 고구려 창업에 큰 내조를 함. 그러나 주몽이 첫부인 예씨의 아들 유리를 태자로 책봉하자 왕위계승권을 잃어버린 비류와 온조를 대동하고 남하, 새로운 국가 백제를 창업.

여기엔 이론이 많다. 워낙 사료가 희박한 가운데 야사와 설화, 그리고 역사가들의 가정까지 뒤섞여 그 사실 여부를 정확히 가늠키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에 대해 극히 인색한 삼국사기에 그녀의 기록이 남겨져 있는 점으로 미뤄 그녀가 역사에 빠져선 안될 만큼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에는 이론이 없다.
불과 너덧 문장으로 그녀 일대기를 요약했지만 그녀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개국한 나라의 이름들 - 고구려, 백제(伯帝), 온조국, 십제국, 백제(百帝) -을 열거하노라면 그녀가 한반도사, 아니 반도를 넘어선 대륙 속의 한민족사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가는 책을 줄줄이 쓰고도 남음직 하다.


조금 비약해서 그녀가 아들과 함께 건국한 백제의 후손들이 일본 건국신화와 연결된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가히 그녀의 기운은 고대 동북아 3국 한·중·일사를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그리고 2000년이 지난 지금, 그 기운은 드디어 태평양을 건너 미주동포의 기상마저 일으켜 세우고 있지 않은가.드라마의 성공, 즉 재미의 한 가운데 소서노가 있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무슨 열정으로, 또는 무엇에 한이 맺혀서 이 여인이 그토록 국가건설 즉, 제왕의 자리를 추구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그녀가 한민족 고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그리고 가장 찬란한 문화유산을 남긴 삼국 중 두 나라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사실이다.

혹자들은 고대시대 국가 건설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 양’ 평가절하도 하지만 글쎄, 2000년 전이라고 해서 새 나라 창업이 녹녹했을까? 더군다나 객지사람(주몽)을 왕으로 세우고 또 북쪽에서 쫓기다시피 남하한 객지인 신세에서 나라(백제)를 세운 것이 아니던가 말이다. 그 과정에서 보여준 그녀의 기개와 지혜, 그리고 결단력은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커다란 교훈을 남기고 있음이다.
많은 이들이 소서노에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녀의 장대한 스케일 때문이라 생각한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한반도 조차도 너무 넓어(?) 반쪽으로 나눠 살고 있건만, 그녀는 만주대륙과 한반도를 무대로 경계 없는 꿈을 펼치며 건국신화를 창출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지난 반세기, 극한의 냉전시대를 살아오며 대한민국 사람들의 북쪽 끝은 휴전선에 멈춰져 있다. 말로는 삼면이 바다인 한반도가 우리땅이라고 했지만 사실상 북쪽은 배 타고도 나갈 수 없는 철벽, 섬 아닌 섬에 살아왔다. 근래에 ‘섬 대한민국’ 상황이 변하고는 있지만 아직도 한국인들에게 있어서 북쪽 끝은 휴전선일 뿐,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공간적, 시간적 한계를 넘어 자유의 나래를 펼친 ‘자유인’ 소서노에 연정을 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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