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김구선생 ‘겨레사랑 전시회’를 보고

2006-11-0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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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일(우정공무원)

지난 10월 23~28일까지 뉴욕 플러싱의 코리아빌리지 열린공간에서 백범 김구선생 겨레사랑 전시회를 위해 백범기념사업회 뉴욕지회가 소장하고 있는 선생의 임정 시절 및 광복 후 활동에 대한 선명하게 확대된 72점의 사진들과 백범의 유품과 족자를 감명깊게 관람할 수 있었다.

많은 한인들은 백범 김구선생 하면 일제치하 때 중국으로 망명, 임정 주석을 지내면서 독립운동을 한 분으로 해방 후 귀국, 암살당한 정도로 기억하나 선생의 자서전 백범일지를 보면 황해도 벽촌의 어린시절 기록부터 청년기의 방랑과 일제 식민시대의 시련, 그리고 중국 망명후 상해 임정 시절의 참담하고 험난한 환경 과정을 보내면서 광복군 창설로 조국의 독립에 생애를 헌신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금만 관심을 더 갖는다면 우리가 백범 선생을 추앙하고 민족 최고지도자로 존경하는 그만한 사연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수많은 사건들이 수록되어 있는 백범일지를 읽고 충정의 말들은 후일 기억나지 않아도 다음 말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민족국가에 대한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하느님이 물으면 나는 서슴치 않고 “내 소원은 대한독립이요”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또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하는 세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큰 소리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하고 대답하겠다”면서 “나 김구의 소원은 이것 하나 밖에 없다”고 하신 말은 두 번, 세 번 읽을수록 고개만 숙여지고 초라한 내 자신의 부끄러움만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자주독립한 통일정부가 들어선다면 정부청사의 말단 문지기(수위)라도 될 것임을 원하였다. 다시말해서 독립한 제 나라의 빈천(미천한)이 남의 밑(강대국에 종속이나 지배)에 사는 부귀보다 기쁘고 영광스럽고 희망이 많기 때문이라 하였다.
백범이 가신지 57년이 지난 지금, 남북 공조 문제나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북미 관계나 한미 상호 현안들을 보면서 선생이 살아있다면 어떤 처방과 훈령을 하고 후배들에게 어떠한 행동을 요구할까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전시회에 참석한 사람들을 위해 기념사업회에서 준비한 음식들로 석식을 끝내고 그 자리에서 ‘백범 김구의 죽음’이란 다큐멘타리 역사특집(KBS 제작)도 1시간 이상 상영하여 지난 선배들의 정의의 가르침이나 젊었을 때 듣고 배웠던 선생의 저격 최종 배후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는 사록들을 다시 보는 값지고 의미있는 시간이었다(저격에 관여된 자들 - 안두희, 전봉덕 헌병부사령관, 원용덕 헌병사령관, 장 모 포병사령관, 김자웅 소장, 홍종만, 김창용 특무대장, 김종원 치안국장 및 행정주 최고위층 등).

끝으로 기념사업회 뉴욕지회 회장 및 임원들의 물심양면으로 본회를 지원하고 있는데 치하를 드리며 아울러 6.25참전 전우회나 광복회 같이 전쟁 참여자 또는 정부연금 수령 대상이 유공자 직계로 회원 자격이 제한되는 단체들과는 성격이 다르므로 많은 젊은층들을 회원으로 확보하여 백범 선생의 민족사랑 사상이나 평생을 조국의 독립과 통일에 헌신하신 이념정신을 계승하는데 참여할 수 있도록 저변 확대 특별대책을 세웠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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