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디지탈 시대와 미국 이민

2006-11-0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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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경(변호사)

누가 그러던가, “미국은 정확하고 빈틈 없고, 법에 의해 움직이는, 편법이 통하지 않는 국가”라고. “미국은 정직하고 성실하기만 하면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는다”라고.이는 미국으로 이민 온 한인들이 미국이란 나라를 묘사하는데 사용하는 수식어구 중 일부들이다.

어떻게 보면 한국에 대해서 염증을 느낀 사람들이 미국이란 나라가 해줬으면 하는 바램일 지도 모르고 한국을 떠나서 살고 있다는 점을 정당화하는 이유일 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필자를 비롯해서 동포 모두는 여기 미국에 살고 있고, 이민을 결정한 순간부터 좋던 싫던 이곳 룰 대로 살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수년간 이민법을 다룬 필자가 경험한 미국은 적어도 이민에 있어서 만큼은 빈틈도 많고 합리적이지도 않았다. 필자의 경험으로 봤을 때, 수많은 이민자들은 비효율적이고 헛점 투성이인 이민제도 및 이민국의 혜택 아닌 혜택을 받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같은 이유로 멀쩡한 서류가 망가지기도 한다. 이민 변호사들 역시 이민국의 비효율적이고 비정확한 시스템을 이용해서 의뢰인들의 케이스를 처리해 온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도 이민제도를 악용하거나 제도의 헛점을 이용해서 방만하게 이민을 진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과연 얼마나 많은 이민자들이 이민서류 앞에서 정직했겠는가? 얼마나 많은 이민자들이 시민권 서류 앞에서 진실만을 말했겠는가? 단순히 이민국에서 우리의 거짓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또는 그 심증은 있되 증명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많은 이민자들은 영주권을 받고 시민권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 이민국의 반격이 시작될 예정이다. 아니 이미 시작됐다. 이민국 시스템의 첨단화는 서류의 빠른 처리와 허위서류 색출을 한층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시행됐다. 두 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겠다는 국토안보부의 의지를 볼 수 있다.그러나 빠른 처리를 위해서는 서류 자체의 빠른 처리 보다는 접수 서류량 자체를 줄이는데 주안점을 둔 듯 싶다. 이민국 및 노동부에서는 접수 서류 중 많게는 30%까지도 가짜 서류로 보고 있다. 너무 많은 가짜 서류로 적체가 가중된다고 보는 것이다. 가짜 서류의 색출이 가능해지면 접수량이 줄어들고 따라서 이민국 수속이 전체적으로 빨라질 것이라는 논리인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미국으로 이민을 오겠다는 근본적인 의지 자체역시를 꺾겠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서류의 오류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순수한 실수조차도 허위서류로 간주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과거에 어떤 서류에 어떤 내용으로 기재가 되었는지 모두 파악하고 있어야 하며, 과거에 제시했던 모든 서류 내용을 이민국이 샅샅이 파악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 모든 일을 진행해야 한다.

내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다고 할 지라도 나의 서류는 사소한 실수에도 이민국이 휘두르는 칼날에 두 동강이 날 수 있다.
필자는 이제 도래한 이민국의 디지탈 시대를 환영해야 하지만 선의의 피해를 볼 수 있는 동포들을 생각하면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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