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부동산 침체’ 위기인가, 기회인가

2006-11-0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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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지난 1970년대 중반부터 상승하기 시작한 미국의 부동산 가격이 1980년대 중반이 되자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뉴욕 맨하탄 아파트의 경우 10년 사이에 7배 정도가 뛰었다. 부동산에 투자했던 사람들은 톡톡한 재미를 보았고 투자 붐이 열풍처럼 불었다. 아파트와 공장건물이 고급 콘도와 코압으로 속속 전환되었고 신축 건물이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바꾸어 놓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부동산 열기가 식으면서 1987년부터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하여 1996년까지 거의 10년간 계속 떨어졌다. 부동산 가격이 최고로 올랐던 시점에 무리하게 큰 집을 샀던 사람이나 막판에 부동산개발사업에 뛰어들었던 사람들은 큰 손해를 보았다. 집을 경매에 넘긴 한인들도 많았고 투자회사를 파산시킨 경우도 있었다.
이 때 바닥을 친 미국의 부동산 가격은 지난 10년간 꾸준히 상승하여 올해까지 보통 주택의 가격이 3~4배나 올랐다. 특히 맨하탄과 같은 지역의 상업용 부동산은 이 기간에 10배 이상 오른 곳도 있다. 이런 추세에 따라 몇년 전부터 다시 부동산 투자 열풍이 불었다. 그러다가 이제 부동산 버블론이 눈앞에 닥쳐오게 되었다.


지난 주 상무부가 발표한 미국의 주택경기 상황을 보면 지난 9월 기존주택의 가격은 전년 동기에 비해 2.5%가 하락하여 40년만에 가장 큰 하락폭을 보였고 신규주택의 가격은 9.7%가 급락하여 36년만에 가장 큰 하락폭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이런 수치는 미국의 부동산 시장이 심각한 침체기에 들어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으로 일부 전문가들은 내년에 대공황 이후 처음으로 연간 기준으로 주택가격이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주택을 비롯한 부동산가격의 하락은 미국경제에 최대의 악재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인은 평생을 일하고 살아오면서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의 모기지를 다 갚고나면 그것이 유일한 재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집값이 오르면 그만큼 재산이 불어나지만 집값이 떨어지면 그만큼 재산이 줄어들게 된다. 만약 주택값이 많이 떨어져 모기지 액수보다도 적어진다면 재산이 아니라 순 부채를 짊어지게 되고 만다.

9.11사태 이후 미국의 경제가 부진한 가운데서도 미국 경제를 파탄에서 구해준 것은 부동산가격이 상승한 덕분이었다. 주택가격의 상승으로 에퀴티가 늘어나자 일반 서민들이 소비를 계속할 수 있었다. 그런데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면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게 되고 그러면 경제불황이 오는 것은 뻔한 순서이다. 더구나 부동산시장의 침체는 건설과 관련된 여러 분야의 산업에 직격탄을 날려 실업과 소비 위축을 더욱 악화시키게 된다. 지금 미국에서 이미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부동산 버블이 세계적으로 형성되어 있는데다 미국경제의 여파까지 고려할 때 이제부터 오는 경제불황은 세계적인 불황이 될 공산이 크다.

이제 시작된 부동산경기 침체가 언제까지 계속되고, 어느 정도가 바닥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일부 전문가들은 올해에만 약간의 조정이 있을 뿐 부동산가격의 대폭 하락은 없을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다. 또 어떤 전문가들은 내년에 바닥을 칠 것이며 상당한 하락현상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낙관적 견해와는 반대로 부동산 침체 현상이 수 년이나 10년 이상 계속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도 없다.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는 침체 상태는 그 바닥과 기간만을 알 수 없을 뿐 엄연한 사실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큰 부동산은 가지고 있지 않은 일반 주택 소유자들도 재산의 감소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부동산시장은 결코 붕괴되거나 파멸되지는 않는다.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 신규주택 등 건설이 중단되고 인구는 계속 늘어나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가격이 다시 오를 수밖에 없다.

미국 서부의 폐광 도시나 뉴욕 할렘의 슬럼화와 같은 생활환경의 변화나 엄청난 자연재해로 인해 인구가 급격히 줄지 않는다면 부동산 가격은 오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오르면 많이 떨어지듯이 많이 떨어지면 그만큼 많이 오르게 된다.
그러므로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는 것을 걱정만 할 일이 아니다.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면 집 없는 사람들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또 집이 있는 사람들도 다른 부동산 투자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된다. 부동산시장의 침체로 인해 겪게되는 경제적 고통은 이런 기회를 위해 지불하는 댓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지금은 한인들이 이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기 위한 준비를 시작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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