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리버럴들의 세계

2006-11-0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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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옥(전 고교 역사교사)

1932년 모스코 붉은광장에는 시내 구경과 선정된 집단농장을 초청자의 각본에 따라 둘러본 영국 극작가 조지 버나드쇼가 기자들 앞에 서 있었다.
“무자비한 폭군 밑에서 소련 인구의 반이 굶고있다는 얘기는 터무니없는 얘기다. 모든 인민계층에서 영양부족 상태로 사는 사람은 한명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런던타임스에 편지를 썼다. <노동자 대중은 산뜻한 옷을 입고 있었으며 얼굴에는 기름기가 흐르며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음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영국과는 달리 소련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다...>
그럴 즈음, 소련인 대부분은 쥐, 개미, 지렁이는 물론 사람 살까지 먹으며 연명했고 5만이 넘는 교회가 파괴되고 성직자는 수용소로 보내져 있었다.
“관객을 웃기기 위해 자신은 그만큼 울어야 했었다”는 그는 소련 방문을 통해서는 자신이 실컷 웃기 위해 소련인을 울게 함으로써 공산혁명 15주년 기념행사를 더욱 빛내주고 독재자의 환대에 보답했다.
당시 소련을 위한 진보 변호인들은 서방세계 어디에나 있었다(존 리드, 찰리 채플린 등).이들은 공산혁명 성공에서 이상사회 출현을 보는 것같은 착각을 한 고전적이며 낭만적이었지만 지금의 리버럴은 명성 뒤에 오는 출세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조직적이고 파괴적이다.


정치, 인권, 환경, 빈부 격차 등 개혁이 요구되는 문제 해결의 집행자로 자처하며 현란한 언어를 구사하지만 자신의 행위에 대한 문책은 불허한다. 민주주의 과잉으로 인한 정부 취약성을 이용하고 느슨한 법의 관용의 혜택을 받으며 기성 권위와 질서를 부정한다.
기부금을 통해 선거를 치루는 미국 선거제도를 맹렬히 비난하면서 자신은 좋아하는 후보와 정당에 막대한 후원자금을 기부하는 헝가리 출신 재산가 소라스는 자신이 누구이고 리버럴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가를 잘 설명해 주는 거대한 리버럴이다.

말과 행위가 다른 이런 리버럴 때문에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 케네디나 팬로시의원, 클린턴 전 대통령이 빠질 수 없다. 진화된 이런 리버럴들은 미국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지만 언론계와 대학교수의 많은 수가 진보주의자라니 미국 정부가 대외문제 처리에 얼마나 어려움이 있겠는가
를 짐작할 수 있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도 관심을 갖게 한다.지난주 북한당국에 초청된 ABC 굳모닝 아메리카 뉴스팀이 미전역에 내보낸 방송 내용은 저널리스트로서의 자세가 리버럴의 시작에 가까운 것이어서 안타까웠다.땅 깊숙히 파고 만들어진 지하철 역내, 단 한곳에서만 볼 수 있는 샨델리아로 장식된 역을 관광하며 깨끗함을 칭찬한다. 무표정한 몇 명의 승객이 있는 열차 내에서 아기를 업고 앉아있던 아낙네가 안내원을 쳐다보며 벌떡 일어나 취재기자에 자리를 양보한다. 간부의 자식들만 모아 공부시키는 학교를 방문해 자신들은 미국 영화를 즐겁게 본다며 배운 노래(Sound of Music)를 함께 부르며 즐거워한다.

수령이 주는 옷을 입고 수령이 준 악기로 연주하는 것이 자랑스럽다는 아이들의 연주에 감탄한다. 핵무기는 나라를 지키기 위한 것이지 외국에 팔 목적이 아니라는 한장섭의 말을 공보비서처럼 보도한다. 북한 핵실험 후 초청받아 북한을 취재하는 유일한 서방 방송사임을 알리는 것
을 잊지 않는다.방송사의 상업 목적과 함께 보도의 진실성은 언론의 생명이다. 평양이라는 도시는 서구적 의미의 시민도시가 결코 아니다. 당 수뇌를 위한 정치, 군사, 시위운동 목적으로 건설된 도시인데 그런 곳을 보고 북한 인민의 일상생활을 보는 듯 보도한다면 북한 인민의 고통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좌우간 진보라 지칭하는 리버럴들은 혹 떼려다 더 큰 혹을 붙이는 서투른 솜씨를 갖고 태어난 사람들로써 보통사람들에게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임엔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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