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담’은 누가 만들었나

2006-11-01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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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논설위원)

조지 W.부시 대통령은 지난 주 미-멕시코 양국 국경지대에 새 장벽을 설치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그동안 멕시코 국경을 통한 불법 이민자들의 수가 증가세를 보임에 따른 대응방안의 일환이다. 말하자면 불법으로 입국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처인 것이다.
‘담’이란 바로 좋은 일과 관계된 것이 아니라 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나 물건을 차단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비행기 출입국시 쳐져있는 입국 심사대도 결국 문제를 가려내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담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담이나 철책이 많이 있는 사회나 국가는 좋은 현상이 아니다. 그 만큼 문제가 많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가보면 벽도 많고 집집마다 담은 꼭 있고, 그 것도 모자라서 담 위에 철조망을 친다든가, 깨어진 유리조각을 담장 꼭대기에 박는다든가 한 집들이 즐비하다. 이런 광경은 한국의 인천공항에 내려서 서울로 차를 타고 가다 보면 금방 눈에 들어온다. 이것은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한 단절의 최소한의 방법이다.


그런데 미국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담이 없는 나라다. 다시 말해 미국은 이웃과 이웃, 친구와 친구, 부부는 부부, 부모와 자식, 선생과 제자, 직장의 동료와 동료, 이 모든 사람이 담 없이 자유롭게 살고 있다. 아무리 좋은 나라라도 지구상에 담이 없는 나라는 미국 밖에 없다고 한다.
이처럼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담이 없는 아름다운 나라, 미국에서 없던 담을 만든 사람은 누구인가. 만일 우리가 아무리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담을 쌓는 일에 일조를 했다면 정말 깊이 자성해야 할 일이다.
나이든 노인들의 여가선용을 위해서 토지를, 그 것도 땅 값이 비싼 플러싱 한 모퉁이의 땅을 시에서 무료로 제공을 했는데 담이 없는 이 미국에서, 또한 담을 반갑게 허용하지 않는 이 미국에서 한인노인들이 얼마나 말썽을 일으켰길래 농장에 최근 철책의 담이 세워졌다.

노인들의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해 야채, 과일을 심어먹으면서 건강하고 즐겁게 살라고 제공한 농장에 시에서 오죽하면 담장까지 치고 철문을 잠그고 야단이겠는가. 미국에서는 죄를 짓지 않고는 어딜 가나 신분증을 보자는 일이 없는데 한인노인들이 얼마나 법을 준수하지 않았으면 농장에 드나드는 경작자의 신분까지 조사할까? 참으로 부끄럽고 고개를 들고 다니기가 어려운 일이다.

‘담’ 얘기가 나오니 이참에 우리 한인들이 만든 담 얘기 또 하나 해보자. 뉴욕에서 노래방을 화끈하게 유행시킨 민족은 바로 우리 한국인이다. 일본노래방은 물론 없거니와 중국계 노래방도 있긴 있어도 우리처럼 곳곳에 간판 걸고 흥청이며 하는 곳은 없다. 노래방이 우리 사회에 얼굴을 내민 것은 원래 취지가 힘들고 지친 이민생활에서 잠시나마 쉬고 스트레스를 풀고 가라는 의미였다. 그래서 노래방이 건전한 이민사회 발전에 기여한 바도 적지 않게 크다. 그런데 이 노래방은 담이 너무 두터운 나머지 자칫하면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 얼마 전에도 벽이 너무 두터워 외
부와 단절된 노래방에서 10대들이 떼를 지어 같은 10대를 칼로 찔러 숨지게 한 일이 있었다. 그동안 현금을 강탈당한 노래방도 꽤 여러 곳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방음을 이유로 담은 쳐졌지만 실은 담이 너무 두껍다 보니 그 안에서 온갖 퇴폐행위가, 그 것도 갈 곳 없는 청소년들의 비행이 알게 모르게 많이 눈감아 지고 있다.

담이 있다는 것은 이유가 어떻든 좋은 현상이 아니다. 미국같이 자유로운 나라에서 법과 질서만 잘 지키면 담이 없이도 살 수 있는데 개중에는 법을 잘 지키지 않아 두꺼운 담 속에서 살고 있는 한인들이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람과 사람과의 사이에도 담이 있다는 것은 불행이다. 가정이나 직장, 이웃 간에 담을 쌓는 것은 문제가 있거나 조용히 나 혼자만 살겠다는 의미이다. 왜 없던 담을 만들어 스스로 그 속에 갇히는가. 담을 만든다는 것은 스스로를 구속하고 스스로가 인격적인 대우받기를 포기하는 것
이다. 그래서 자유가 없고 평화가 없고 기쁨이 없다. 담은 주어진 자유를 제대로 누리지 못할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담은 누가 만드는가. 바로 나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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