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무엇이 진짜 평등인가?

2006-10-3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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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휘(예비역 준장)

고대 그리스의 대도(大盜) 프로크루스테스는 사람을 잡아오면 자신의 침대에 묶어놓고 그 침대보다 크면 다리를 잘라버리고 작으면 잡아늘려 침대 크기에 맞추었다고 한다. 모든 사람을 자기 잣대의 크기에 맞춰 평등하게 만들려고 한 것이다.

평등사상은 근대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한 권리를 누리기 원하며 천부의 인권은 평등함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같은 억지 평등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인권에 바탕을 둔 인간 존중에서 우러나온, 인간의 특성을 고려한 평등이 아니기 때
문이다.평등에 대한 생각은 서구인과 한국인이 다르다. 구미사회에서 평등은 기회의 평등을 말하지만 한국에서는 개성이나 능력, 노력이나 소지 같은 비기회성의 모든 것까지를 포함하여 동일한 가치를 부여하려는 평등의식이 지배적이다.


자기가 한 일에 책임을 지고 소속된 집단에 의해 조정되고 조화를 이루는 서구식 개인주의와는 달리, 농경사회의 집단적 무책임 성향은 버리지 않은 채 개인의 이익이나 주장만 내세우는 것이 아직껏 숙성되지 못한 한국적 개인주의다.
사람은 천차만별이다. 생김새가 제각기 다르듯 생각과 소질과 능력이 다르다. 미남이 있는가 하면 추녀도 있고 뚱보가 뒤뚱거리는 거리에 말라깽이 갈비씨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간다. 수학은 우등생인데 어학은 낙제점수를 받거나 노래는 잘 하는데 달리기를 하면 꼴찌가 지정석
인 사람이 있다. 재치는 있는데 게으른 사람, 기억력은 좋은데 창의성이 떨어지는 사람... 따지자면 한이 없다.

참다운 평등은 인간의 천차만별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천차만별의 사람들이 그 천차만별의 특성을 살려 저마다의 자리에서 일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사회가 좋은 사회다. 프랑스 학교의 성적표에는 우등생 종류가 여러가지 있다. 미술의 우등생, 과학의 우등생, 친절의 우등생, 봉사의 우등생... 아이들의 개성과 능력을 인정하고 조장해주는 평가다. 우리의 획일적 성적평가표와는 너무 대조적이다.
사회는 날로 분화되고 다양화 되어가고 있다. 미국에는 20만 가지가 넘는 직종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전에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직종(職種)이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다.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속병이 나서 병원에 가면 내과의사 한 사람이 모두 처리했었다. 지금 종합병원 내과에는 호흡기, 순환기, 종양혈액, 신장, 알레르기, 감염, 내분비, 일반내과 등으로 음식문화의 다양성도 도처에서 볼 수 있다.

한국인은 재수가 없다고 먹지 않는 말고기를 프랑스인은 최고의 강장식으로 먹는다. 불고기와 스테이크로 즐겨 먹는 쇠고기를 인도에서는 식용을 금하고 성스러움의 대상으로 삼는다.음식문화 뿐이 아니다. 향토냄새 풍기는 세시풍습에서부터 정치, 사상, 경제, 교육, 사회, 종교, 문화에 이르기까지 곳곳마다 제 모습, 제 버릇, 제 방식을 지니고 있다. 산천의 모양과 기후 풍토가 다르듯이 각 지역마다 나라마다 그들이 걸어온 내력과 일구어낸 전통이 다르다.

많은 것이 혼재하는 세상에서 내 것은 좋고 네 것은 나쁘고, 내 생각은 옳고 네 생각은 틀렸다고 주장하는 옹졸함으로는 공존의 광장이 없다. 각기 그 고유성과 차이의 특성은 배타의 이유가 될 수 없고 선악의 기준이 되지 않는다. 하물며 옳고 그름의 대상이 될 수도 없거니와 더 이상 지역과 학연의 편 가르기로 삼아서는 안 된다.
만인 평등을 내세우던 공산주의 체제는 무너졌다. 그것은 프로크루스테스의 평등이기 때문이다. 북녘 땅에 사는 사람들도 하루속히 이 이치를 깨쳤으면 싶다. 기회의 평등과 개체의 다양성을 함께 인정하고 서로 어우러져 넓은 가슴으로 마주하며 살아가는 세상이 진짜 낙원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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