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잘 먹고 잘 살기

2006-10-2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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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일(취재부 기획취재부장)

미 중앙정보부(CIA)는 1997년에 이미 북한의 붕괴를 조심스럽게 점쳤다. 김정일이 인민들을 굶겨 죽이면서도 막대한 돈을 들여 핵무기 개발에 혈안이 돼 수년간 지속돼온 경제 불황이 소위 북한의 엘리트들에게 까지 영향을 미치자 동요 세력의 등장을 내다본 것이다.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가 마치 신과 같이 받들여 지고 있는 북한 사회를 잘 파악하고 있는 미 중정이 이 같은 전망을 내린 것은 정치적, 사회적 이론을 떠나 인간은 누구나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란다는 본능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잘 먹고 잘 산다’는 기준은 비교적인 것이지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다.가난한 사람에게는 하루 세끼를 거르지 않는 것만도 그날 하루를 ‘잘 먹고 잘 살았다’고 생각하는 기준이 될 수 있고 부유한 사람에게는 하루 세끼를 일류 요리사가 만든 음식만을 먹어야 그날 하루를 ‘잘 먹고 잘 살았다’고 생각하는 기준이 될 수가 있다.
따라서 북한과 같이 세계에서 가장 폐쇄된 사회에 사는 인민들은 ‘잘 먹고 잘 산다’는 기준이 미국에 사는 ‘샘’이나 한국에 사는 ‘갑돌이’와 비교가 아닌 옆집 ‘순이’와 비교하게 돼 그 굶주린 삶에도 김정일 정권에 대한 큰 불만이 없을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세계 정서를 알고 국제사회를 경험한 북한의 상당수 엘리트들은 다르다. 옆집 순이가 굶주리고 있을 때 프랑스 ‘샴페인’과 러시아의 ‘캐비아’를 즐기며 벤츠 승용차에 익숙한 생활을 누리다 하나 둘씩 이런 ‘사치’가 어렵게 되기 시작하자 그 생활을 가능케 해줬던 최고 지도자 김정일의 능력에 의혹과 불만이 싹 틀수 있다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게다.
이는 바로 미 중정의 분석이다. 이러한 분석이 맞아 떨어진 것은 최근 미 재무부가 발표한 ‘미 위폐 달러 현황’ 연례 보고서에서도 엿볼 수 있다.

보고서는 미 연방비밀검찰국(SS)이 1989년, 즉 북한의 경제가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한 무렵에 처음으로 북한이 제조한 정밀 위조 미국 달러인 ‘슈퍼노트’를 발견했고 그 후 16년간 미국이 적발, 압수한 ‘슈퍼노트’가 5,000만 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다.
북한이 해외에서 벌어들이지 못하는 달러를 자체적으로 찍어낸다는 것으로 미국은 지난 해 김정일이 정권유지 용으로 마카오 뱅코 델타 아시아에 유지했던 은행 계좌를 바로 이 위폐 유통과 마약 거래, 대량살상무기 거래 관련 등으로 동결시켰고 이를 이유로 김정일은 6자 회담을 거부하고 있다.

김정일이 미국의 자금동결에 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자 미국은 바로 이러한 조치가 1997년 미 중정이 전망한 ‘동요 세력’의 고삐를 푸는 지름길임을 확인하고 북한의 금융거래를 조여 가는 조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은 특히 북한이 지난 7월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고 10월 핵 실험을 발표한 것이 바로 미국과의 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김정일의 ‘무능력’에 불만이 커져가는 군부 세력의 의지에 따른 것일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에 따라 유엔 결의안 등을 밀어 부쳐 대북제재에 더욱 강하게 나오는 것도 바로 미 중정의 1997년 전망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미국이 유엔 대북 제재결의안에 회원국들이 북한에 ‘사치품’을 수출하지 못하도록 포함시킨 부분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이번 유엔의 대북 제재결의안이 북한 엘리트들의 ‘잘 먹고 잘 살기’에 어떠한 영향을 가져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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