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산을 사랑하게 됨이...

2006-10-2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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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목회학박사)

산은 말이 없다. 산은 정직하다. 산은 품어준다. 지난 해 스물 한 번의 산행에 이어 금년 스물 세 번의 산행을 했다. 올 목표가 서른 번인데 잘 하면 실행할 것 같다. 어쩌다 이렇게 산을 좋아하게 됐나. 강원도 산골에서 태어나 산 속에서 자랐어도 산을 몰랐던 지난 날. 산을 오르고 좋아하게 되는데도 다 때가 있는 걸까.
어느 산악문학가는 사람을 크게 두 타입으로 나눈다고 한다. ‘산을 오르는 사람’과 ‘산을 오르지 않는 사람’. 이제는 그 문학가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갈 것 같다. 왜냐하면 산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산이 좋아졌다니, 산을 사랑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사랑하지 않고는 좋아질 수가 없다. 산을 그리워하기 시작했기에 사랑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게다.

산행은 처음 고행으로 시작됐다. 지금도 산행은 고행이다. 언제 어디서 산을 오르더라도 등 뒤에 배어 나오는 땀이 그것을 말해준다. 아무리 추운 날이라도 산에 오를 때는 땀이 난다. 고생 끝에 낙이 오듯이, 오를 때 힘든 만큼 산 정상에 도달해 아래를 내려다보는 그 흐뭇함이란 고통만큼 희락이 있다.
태어나 처음 시작된 산행일지는 지난 해 1월 시작된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날. 아마 섭씨 영하 20도는 되었을 게다. 네 명이 산행을 했다. 너무 추워 복면을 뒤집어쓴 한 사람. 눈만 빠끔히 내 놓고. 다들 두툼히 몸을 감싸고. 산은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산은 겨울 산, 설산이 제일 아름답지요” 산행을 인도한 그의 말. 노루가 나타났다. 도망가지를 않는다.
너무도 추운 날. 하루 전, 산에 가자고 하던 그의 청. 토요일. 한국서 인기리에 방영되는 드라마를 빌려다 다리 쭉 뻗고 늘 보곤 했던 주말이다. “이번 토요일 산에 같이 가시지 않겠어요”“아니, 이렇게 춥고 눈이 많이 왔는데 산은 무슨 산이야! 재미있는 비디오 빌려다 주말을 즐겁게 지내야지. 산에는 무엇 때문에 간담!” 속이 탔다. 그래도 거절하지 못했다.


그 다음 상황. “이번 주말에는 어떻게 산에 가지 않을 핑계를 만들까. 산에 가자고 하는 사람, 성의도 있는데 그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잘 이유를 만들어야지” 금요일 저녁만 되면 그런 궁리를 해야만 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발 뒤가 말라 갈라져 잘 걷지를 못한다. 서울에서 손님이 왔다. 아이들이 어디 가야하는데 자동차로 픽업을 해야 한다...” 등등.
끌려가다 시피 일곱 여덟 번을 산행을 했나 보다. 산이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다. 산의 맛을 알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낮은 산엘 갔다. 그러다 점점 높은 산으로 옮겨졌다. 겨울이 갔다. 봄이 왔다. 여름이 오고 가을이 왔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주말 산행은 여하한 이유 없으면 실
행됐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은 ‘사계(Four Seasons)산악회’.

주로 전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산행을 했다. 30대부터 50대까지 여러 명이 산행에 초대됐다. 그러나 한 번 나오고 안 나오는 사람도 있고 한 번 건너 동행하는 사람도 있다. 한 사람만은 줄 곧 계속 산행을 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산을 알게 해 준, 그 사람. 그는 “산행은 나를,
일주일을 살게 해주는 동력을 제공해 주는 것 같다”고 말한다.
산행을 통해 느끼고 배우는 점은 많다. 산행은 진정 스트레스 많이 쌓이는 현대인의 삶에 신선한 힘을 제공해 준다. 산에 오를 때는 힘이 들고 내려올 때는 조심해야 하기에 잡념이 생길 틈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복잡했던 머리를 텅 비게 할 수 있다. 이것은 속세에 물든 정신적인 때를 씻어내는 것과 비교할 수 있다. 산을 오를 때 흘리는 땀은 몸의 찌꺼기가 나가는 듯 머리가 상쾌해 진다.

산 정상에서의 그 기분, 즉 “해 냈다”는 자긍심은 가슴을 뿌듯하게 한다. 산에서 먹는 과일이나 음식은 먹는 그대로 살이 되고 피가 되는 것 같다. 유명 식당에서의 값 비싼 음식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다. 산에는 나무와 풀들이 많아 산소가 충분하고 공기가 너무 맑다. 그래서인지 산을 오를 때 폐활량이 늘어나고 심장이 강해지는 것 같다. 보통 낮은 산이라 하여도 두 시간부터 여러 시간을 걸어야 하니 건강에 너무 좋다.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얼굴이 화사하다. 그것도 그렇지, 땀을 많이 흘리니 그럴게다. 그래서 사람을 만날 때마다 기분이 더 좋다. 한 번도, 산행을 하다 만난 사람 쳐놓고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산에는 따뜻한 기가 흐르는 산이 있는 반면에 침침한 기가 흐르는 산도 있다. 양기 있는 산이 좋다. 산은 거짓이 없다. 산은 평등하다. 산은 영원하다. 산을 사랑하게 됨이 이렇게 좋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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