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백악관에 간 소년 소녀들

2006-10-3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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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백악관은 미국 정치의 중추 기관이다. 일반 소년 소녀들은 각자 교육 기관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백악관과 소년 소녀들은 별로 관계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때로는 소년 소녀들과 백악관이 밀접한 상호 관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요즈음이다.

그동안 몇 장의 비슷한 사진들을 보아왔다. 그 중의 하나는 J.F.케네디 대통령과 학생들이 만나는 사진이었다. 거기에 어린 소년 빌 클린턴의 모습이 보였다. 다음 것은 역시 J.F.케네디 대통령을 만나는 어린 소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임명자의 얼굴이 다른 학생 사이에 보인다. 또 하나는 필자가 일하는 학교 졸업생이 당시의 대통령 빌 클린턴과 악수하는 사진이다.


며칠 전에 결혼 청첩장을 받았다. 클린턴 대통령과 악수하던 바로 그 소년이 보낸 것이다. 서부에서 가장 알려진 S대학 교수 회동실에서 결혼식을 거행하는 것이다. 신랑 신부 둘이 다 그 학교의 교수라고 하니, 이들이 장래 자연과학계의 노벨상 수상자 후보들일 지도 모른다.이번에 흔히 세계의 대통령 또는 세속적인 교황이라고 일컫는 유엔 사무총장으로 임명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널리 알려졌다. 그가 1962년 충주고교 3학년 때 적십자사가 선발한 비스다(VISTA) 대표 4명 중 한 사람으로 뽑혀 미국 백악관을 방문 케네디 대통령을 접견하였다. 이 자리에서 그는 장래 외교관이 될 생각을 하였다고 한다. 그 이후 훌륭한 외교관이 되려고 노력한 결과 유능한 일꾼이 되었고, 드디어 그는 오늘의 영광을 얻은 것이다.

지인의 한 분은 서독과 동독 사이의 벽이 허물어진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의 삼자매를 거기서 역사의 현장을 보아야 한다고 배낭여행을 보냈다. 또한 그는 한국이나 미국에서 존경할 만한 ‘큰 어른’을 만날 때는 자녀들을 대동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직접 그 분들을 만나뵙고 인사를 드리거나 악수를 한 번 하는 것에 굉장한 뜻이 있다고 한다.
지나가는 이야기로 들었는데 날이 갈수록 그의 말을 음미하게 된다. 뛰어난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장래의 목표를 정하거나 살아나가는 방법을 결정할 때는 반드시 어떤 계기가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 때로는 사람일 수 있고, 때로는 사건일 수 있다. 처음부터 강한 인상을 받을 수도 있고, 때로는 차츰차츰 그 씨앗이 마음 속에서 자라날 수도 있다. 역사의 현장을 직접 본다거나, 큰 인물을 직접 만나보는 일은 마음에 씨앗을 심어주는 작업이다. 이런 씨앗이 많을수록 자녀에게는 선택의 밭이 넓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씨앗을 소중하게 다루며 좋은 열매를 맺도록 가꾸는 열정을 가지는 일이다. 가령 외교관이 되고 싶다는 꿈은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있다. 그렇다면 목표 달성을 위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외교관이 되려면 어떤 능력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위해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 지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꿈이 없는 것보다는 꿈을 가지는 편이 좋다. 꿈이 있으면 삶의 자세가 다르다. 꿈이 있으면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노력 없는 꿈은 소위 ‘백일몽’에 지나지 않는다. 백일몽은 헛된 공상이다. 이런 꿈은 결과가 없는 허상을 좇게 하며 부질없이 시간을 허비하게 만든다. 꿈의 알맹이를 찾으려면 노력을 지불해야 하고, 그것도 장기간에 걸쳐.

부모는 자녀가 꿈을 가지기 바란다. 그것도 오직 그만이 가질 수 있는 꿈이면 더욱 좋겠다. 하지만 꿈을 가지라는 말을 하였다고 자녀가 꿈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각박한 세상을 보면서 어른보다 더 현실적인 어린이가 되는 경우가 있다. 세상의 한 모퉁이를 보고, 온 세상인 줄 착각하는 어린이도 있다. 어린이들은 넓은 세상을 보면서 자기 세계를 열면 좋겠다는 염원을 가지고 있다. 어른이 할 수 있는 일은 좋은 씨앗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일이다.소년 소녀 시절에 백악관을 방문한 그들은 대통령, 유엔 사무총장, 교수가 아니더라도 어딘가에서 좋은 일꾼으로 세상을 밝히고 있을 것이다. 높은 긍지와 꿈을 가지고 마음의 씨앗을 가꿨을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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