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서재필과 달리기

2006-10-2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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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자(한미문화연구원)

출근길 운전을 하면서 여전히 앞만 보며 달리는 사람 몇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상념에 잠기다가 문득 ‘아, 다음 2주 후엔 서재필 박물관 가보기 운동’으로 뉴욕한인마라톤 동우들이 서재필 박사의 유택이 있는 필라델피아를 향해 완주를 하게 될 것이다. 처음 이 행사의 발상을 들었을
때, 겁많은 나는 “어떻게 그 먼거리를 달릴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서재필 박사의 미국 이민사회에 존재 의미와 현재 필라델피아 서재필 재단의 활동사항은 이미 지상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져 있어 이제 우리가 자신들 스스로 재조명해 보고 자손들에게 주는 교훈을 삼으면 좋겠다.
언젠가 필자는 서재필 재단의 행사에서 “서재필은 필라만의 인물이 아니고 뉴욕, 시카고, 하와이... 미국 전체의 한인들의 위인이다”고 강조한 적이 있다.
현 시대에 살면서 ‘위인, 영웅’의 부재를 안타까워 한다. 우리에게는 그리 멀지 않은 옛적의 친근한 서재필, 그리고 안창호 선생이 계시지 않은가?


우리가 하고 있는 이민생활을 그리 멀지 않은 그 날에 그대로 해오셨던 어른들의 살아있는 음성과 체취를 우리가 느껴보자. 그 분들의 고뇌와 시대적 갈등, 그리고 문화와 경제, 정치적인 환경을 상상해 보라. 그야말로 아시안/한국의 문화와 정치의 사막과 같았던 이 땅에 뿌리를 내
리기 시작했던 어른들의 그 시간을 생각해 보는 것이 우리에게 분명히 귀한 의미를 찾는 길이라 믿는다.그리하여 필라의 한인 후예들은 서재필 박사의 유택을 박물관으로 기립하였고 서재필 재단의여러 봉사활동을 펴오고 있다.

서재필 재단은 서재필 박사의 훌륭한 삶의 발자취를 우리가 살아있는 이 삶 속에 동행하고 우리의 자손들에게 전해주어 한국인의 아이덴티티를 좀 더 당당하고 유쾌하게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오늘도 ‘달리고 뛰고’ 있다.뉴욕에 살면서도 필라델피아가 정겹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곳에 우리 선조의 생생한 진짜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필라 시내 어디엔가 자유의 종을 본 적이 있다. 그 금이 간 종을 보면서 어쩌면 ‘자유와 독
립’을 외치던 사람들의 목 터진 함성과 찢어질듯한 가슴의 열망을 느껴보았다. 누구라도 무엇인가를 그토록 간구하는 사람이라면 그 전율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 무엇인가를 반드시 이루어낼 것이다. 비록 역사는 금간 종과 침묵으로 그의 모습만을 남길지라도.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가고 있는 삶의 의미와 우리가 만들어 두고 가는 ‘한-미인(Koreatn-American)으로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책임과 긍지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이번 이 ‘서재필 가보기 마라톤’ 행사가 신문 한 구석을 채우다가 쓰레기통으로 사라져갈 기사만이 되기 보다는 이 기회를 잘 경영해 우리의 생각과 의지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가 꿈꾸는 행복한 삶, 그 그림을 그려본다. 우리의 아이들이 자신의 얼굴색과 문화를 넉넉한 마음으로 당연하게 이 땅에 표현하면서 살 수 있게 되기를, 그리고 다른 언어, 문화, 정서에도 넉넉한 마음으로 다가설 수 있기를, 그리고 서재필 박사의 꿋꿋함과 깨끗한 인품을 흠모하
게 되기를, 그들이 서재필을 알고 안창호를 그리워하고 자신으로 돌아와 자신으로 정립하기를.

자, 저 달리는 사람들을 보라. 숲길을 달리고 있는 저 사람들, 자신의 시간과 공간에 충실하게 자연 자체의 호흡으로… 한 발 한 발 움직이여 끝까지 달리는 ‘정직한 역사’를 연습하여 매번 이루어내는 것이다.
이번 서재필 박사를 기념하여 달리기 행사를 할 때 참가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어깨 위에 한국인의 강한 정신과 따뜻한 정이 이 달리기를 마치는 그 순간까지 이끌어낼 것을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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