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종군위안부 결의안 하원통과에 즈음하여

2006-10-14 (토)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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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옥(목사/정신과의사)

미국 하원에서 종군위안부의 문제를 11월 결의에 부친다는 뉴스를 읽으면서 이 문제는 반드시 표결에 부쳐져서 통과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필자는 종군위안부의 관한 일련의 슬프고 심각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1992년 본인이 소속한 미국장로교(Presbyterian Church(USA))의 204차 총회가 위스콘신주의 밀워키에서 열렸을 때 본인은 총회 여성목회부의 대표로서 참석했었다.

당시 한인 정신대 여성 문제에 대한 안건이 뉴욕시 노회에서 상정되어 총회의 인권과 정의위원회에서 토의하기로 되어 본인도 총회 여성목회부 대표와 한인여성의 자격으로 한인 정신대 문제에 대하여 발표하기로 되었다.
Overture 92-86으로 불리는 이 안건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 Comfort Women’으로 한국여성을 사용한 일본정부의 정책에 관한 건”으로 이 안건은 회의장에서 이 문제에 대한 해결대책이 맏아들여진 직후 총회장의 인도로 모든 총대들과 참석자들이 기립하여 정신대로 강제로 끌려가 착취와 고통을 당한 여성들에 대한 간절한 기도가 있었다. 그 때 회장 안에는 그들에 대한 애통함으로 가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본인이 소속했던 위원회가 샌프란시스코에서 회의를 끝내고 비행장으로 가려고 호텔문을 나서던 중 총회 스탭에게서 한인 정신대 문제가 뉴욕시 노회에서 상정되었는데 본인이 대표로 참석하게 되었으며 준비하라는 말을 들었다.총회를 2주일 앞두고 갑자기 소식을 들은 본인은 마침 한국에서 사업차 미국에 오는 동생을 통하여 당시 이효재 교수가 대표로 있던 한국 정신대 대책위원회에서 정신대 여성에 관한 많은 자료를 가져왔다. 또 당시 공원 앞 플러싱 메인스트릿 선상에 사무실이 있던 한인YWCA에서 정신대에 관한 서류와 비디오 테입 등의 많은 자료를 받았고 구춘회 장로는 총회가 끝날 때까지 이 일로 기도했다.

받은 자료들을 읽고 비디오로 보고 들으면서 본인이 받은 충격은 어떠한 말로도 설명이 되지 않을 것이었다. 마침 집에 텔레비전이 고장나서 교회 텔레비전으로 보았는데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필자의 그 당시 감정은 지금도 충격과 고통과 슬픔으로 남아있다.
어린 나이에 부모와 형제들이 보는 앞에서 강제로 끌려가던 일, 결혼한 몸이면서도 끌려가던 것,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수많은 군인들이 그녀들이 있는 방들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는 기록, 고문과 학대, 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치료도 받지 못한 채로 봉사를 했다는 기록, 해방이 되고 나서 어느 낭떨어지에 수많은 정신대 여성들이 떨어져 자살했다는 기록과 수치로 집에 오지 못하고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기록은 필자의 몸과 마음을 고통에 빠지게 했고 마치 본인이 그녀들이었던 것 같은 생각에 빠져들면서 먹지도 못하고, 잠도 잘 수 없었던 것을 기억한다.그 날, 위원들 앞에서 증언을 하고 그들의 문제를 말할 때까지 본인은 마치 실어증에 걸린 양, 어떠한 말도 생각나지 않았고 그들에 대한 생각과 슬픔으로 가득했었다.

뉴욕을 떠나기 전에 뉴욕 북부에 사는 여성의 전화 한통을 받았다. 그것은 그 지역에 숨어 살다시피 하고 절대로 밖에 나오지 않던 정신대 할머니가 정신질환으로 오래 고생하다가 그 전날 자살했다는 소식이었다. 이 모든 사실과 자살한 그 분의 소식을 총회의 위원들 앞에서 말했다. 사람들은 평화가 없는데 평화가 있다(렘6:14)고 말한다. 그들 앞에서 죄지은 자들이 과거에 지은 죄를 고백할 때 그들에게 참된 평화와 화해가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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