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가씨(Agassi)

2006-09-2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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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재옥(의사)

왕년의 US 오픈 테니스 2관왕 아가씨는 24세의 신진 베커와의 경기에서 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역부족으로 마침내 패배했다. 눈물을 글썽이며 마지막 인사를 끝내고 25년간의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아가씨는 아랍 계통의 의사였던 아버지의 성을 따라서 물려받은 이름이다. 그는 두살 때부터 테니스채를 잡았다고 한다. 마지막 경기에서 수많은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복바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는 가냘픈 여인, 아가씨처럼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고려 때 멀리서 배를 타고 온 아랍 상인들이 개성을 통해 많이 드나들었고 아가씨는 아름다운 고려 여인의 대명사로 불리워진 것 같다. 이씨조선을 지나면서 아씨로 줄어들게 된다. 아가씨(Agassi)의 ss 와 아가씨의 ㅅㅅ은 그 액센트와 글씨체에서도 유사성이 많다.


65년도 월남 찬전 때 날씬했던 월남 아가씨들만 보다가 모윤숙 여사가 이끌고 왔던 여성 위문단의 한국 아가씨들을 보는 순간 나는 눈이 휘둥그레지지 않을 수 없었따. 정말 아름답게 보였고, 그 우아함을 다시 되새기게 되었다. 고려 때 장사하러 왔던 아랍 상인들도 그 환상의 우리 여인들을 보고 아가씨, 아가씨를 목 터지게 불렀을 것이다.LPGA에는 우리 아가씨들이 언제나 10등 이내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기라성같은 국제선수들 틈에 끼어 18홀 긴 시간을 끈질기고 침착하게 이끌어가고 있다. 내 외손녀 세연 아가씨가 초등학교에서 미국학생들을 제치고 1등을 했다고 자랑한다. 너무 기특하고 대견스럽다.

40년 동안 미국에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속상해서 속이 다 상해버리고 간이 다 삭아 없어진 이 할비에게 가져온 최고의 선물이다. 그동안 응어리졌던 모든 체증이 다 순식간에 사그라져 버렸다.테니스 황제 아가씨도 역사 속으로 벌써 사라져버리고 내 마음 한 구석에 항상 도사리고 있었던 구원의 짝사랑 아가씨도 망각 속에 희미해지고 있다.이제는 내 어린 아가씨, 세연의 아름다움이 서서히 내 앞에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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