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국민성의 차이

2006-09-19 (화)
크게 작게
호기선(하-버그룹 수석부사장)

세계의 그 많은 나라 중에서도 특히 독일은 외국인들에게 친밀하게 느껴지지 않는 나라 중의 하나인지도 모른다. 듀셀도르프 공항이나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내려서부터 푸대접을 받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면서 불유쾌해 진다. 싸인 하나, 간판 하나 모두가 자기네 말로만 쓰여져 있어서 무엇이라고 하는지 알아볼 방법이 없다.

무척 갑갑하다가 나중에는 마음이 불안해지고 눈치로 알아맞추랴, 신경이 쓰인다. 그들의 국민성에서인지 아니면 국가 방침에서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외국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거나, 아예 외국사람들에 대해서는 상관 조차 안 하는 것만 같다.
택시는 거의 모두가, 새 차건 헌 차건 간에 벤츠인데 기사들 중에는 그야말로 ‘브로큰 잉글리시’로라도 영어 몇 마디 해서 의사를 통할 수 있는 사람은 가뭄에 콩나기인 것 같다. 궂이 영어로 표시하지 않고 영어 몇 마디 못해도 조금도 어려운 것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만만한 태도인 것 같다.


미국 달러도 쓸 수 없고 꼭 환전소 아니면 은행에 가서 도이치 ‘마르크’로 바꿔야 하는 불편도 장난이 아니다. 얼마 전 한국에서 방영되는 한 드라마를 보는 중에 어느 변두리 시가지의 사고현장에 출동된 경찰차를 보는 순간, 이 차가 뉴욕경찰의 순찰차가 아닌가 착각을 했다. 차 옆면에 ‘POLICE’라고 마치 NYPD를 연상시키는 듯 대문짝같이 영어로 쓰여 있었다. 그 옆에 자그만 글씨로 ‘경찰’이라고 한글이 있기는 했지만 웬 한국 경찰차에 영어로 써놓으면 이건 너무 외국인들을 의식한 것인지, 아니면 세계화 해 보겠다는 것인지 아연해지기만 했다.

영어 모르는 국민들은 죄없이 푸대접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반미’ ‘반미’하면서 누구 보라고 영어를 이토록 쓰는 것인지 이해가 안된다. 한국에 와서 살고있는 외국인 수가 얼마나 되길래 이렇게 하는 것일까 궁금하다. 요새, 젊은층에서 표현한대로 이건 좀 ‘오버’하는 것이 아닌가?
서울이나 다른 도시에 상가가 나오는 장면을 보노라면 한글로 된 간판에 못지않게 영어로 된 간판이 빽빽하게 들어서있는 것을 본다. 길에 다니는 사람들이 없다고 가정하고 보면 이 거리가 어느 미국의 도심지 상가인가 혼동할 만큼이나 영어간판이 판을 치고 즐비하다.

영어로 가게 간판을 걸어야 더 고급스럽게 되고 손님들이 더 많이 오는 모양이다. 어느 방송국에서는 한 프로가 끝나고 다음 프로를 예고할 때 ‘다음은’ 하는 대신에 아예 태연스럽게 ‘next’라고 자막이 영어로 나온다. 누구를 위한 방송인지는 몰라도 하여간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영어로 써야만 고급 행세를 할 수 있고 그래야만 멋이 있고 또 그래야만 잘 통하는지도 모른다. 이제 한국은 세계의 열두 번째 경제 강국이라고 하고, 미국과도 동등한 자격으로, 국방과 외교활동을 하려는 새로운 주권국으로 부상하는지는 몰라도 혹시 이 풍조가 설마 명품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우리 한국사람들의 허영심과 타성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면 좋겠다.
미국에서 1,2년 살고 한국에 귀국한 어느 허망한 친구가 한국말은 다 잊어버린 듯 말끝마다 그 잘난 영어 단어만 써가면서 유치한 영어회화(?)만 하려는 어느 머리 빈 친구가 있었다는 말을 연상시킨다.

독일의 양상과 한국은 왜 이렇게 대조적일까? 한국과 독일의 차이는 국민성에서 오는 차이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EU가 결성된 후로는, 하기야 독일에도 조금씩 영어간판이 눈에 띄는 것도 같고, 물론 화폐도 ‘유로’로 통용되고 있으니 전보다는 외국인들에게 훨씬 덜 배타적인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