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06-09-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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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한밤중에는 그래도 세상이 조용한데 해만 뜨면 시끄럽다. 할 일 없는 사람들이 모여 잡담하는 소리들, 귓속말하는 듯한 나즈막한 소리인데도 내용이 시끄러운 소리들, 돈을 더 벌어보겠다고 아우성을 치는 소리들, 남편에게나 아내에게 잔소리나 짜증내는 소리, 혼자서 투덜대는 불만의 소리, 아이들 야단치는 소리, 아이들 우는 소리, 별반 흠 잡힐 일도 없는 멀쩡한 사람을 헐뜯는 소리.. 말을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말소리나 내용이 점점 시끄러워진다. 그러니 세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말로써 시끄러워 간다.

말에도 쓰레기가 있다. 쓰레기란 비닐 봉지에다 보이지 않게 아무리 단정하게 싸서 묶어도 그 모양새가 요란하다.말이란 항상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를 품고 있다. 입에서 나온 말이 듣기에 온순하면 화를 품고있는 사람의 화를 차분하게 내려주는 쪽으로 가고, 목소리가 크고 말이 거칠면 가만히 있는 사람을 건드려 공연히 화를 치밀게 하는 쪽으로 끌고 간다. 그러니 우선은 말소리를 죽여야 한다. 말소리를 낮추면 전하려는 내용이 차분해진다.


대학병원이다 종합병원이다 전문병원이 아무리 치료의 효과를 선전하며 환자들을 끌어모으려 한다 해도 명의 중에 명의는 말이요, 명약 중에 명약은 말이다. 또한 아무리 독한 청산가리나 사약이 사람을 죽일 만큼 독하다고 하지만 독약 중에 독약이 말이다. 위력이 천둥같은 말 가운데에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하며 살아야 하나?
가정은 가족간에 말이 오고가면서 유지되고, 흰 천에 바늘이 오며 가며 수를 놓듯 말이 오고가면서 조직도 사회도 모양새를 이룬다. 부부 사이에 오고 가는 말들이 연민하듯 따뜻한 정이 담겨있으면 당사자는 물론이며 또한 옆에서 보고 듣는 사람의 눈에도 기쁨을 담게 된다.

말은 우선 깨끗해야 한다. 말이 깨끗하고 정갈하면 말하는 사람의 인품이 돋보인다. 그러니 말하기에도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재단이 잘 되지 않은 옷, 바느질이 거친 옷, 색상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 옷, 찢어진 옷은 격식을 갖추어 입어도 품격이 없듯이 우리가 하는 일상의 말도 옷과 같은 것이다.

말 중에서도 큰 말씀이 있으니 하나님과 예수님의 말씀이요, 부처님이나 공자, 맹자, 순자, 또한 세상을 다녀간 성인들이나 철학자의 말씀들이 또한 큰 말씀이다. 그러나 그 말씀들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윗전의 말씀이지 보통사람들이 주고 받는 일상의 말들이 아니다. 우선은 우리에게 먼 말이다.우리는 일상의 말에서 기쁨을 느끼기도 하고 노여움을 느끼기도 한다. 행복이란 자신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상대에게 나를 기쁘게 하거나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도록 내가 먼저 상대를 기쁘게 해주거나 행복을 느끼도록 해주어야 한다. 기쁨을 느끼거나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그 기쁨과 행복을 되돌려 준다. 그래서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 자기 스스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재물도 좋고 벼슬도 좋지만 그보다도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은 나에게 오는 말이다. 말이란 달구지와 같아서 기쁨도 날라다 주고 불쾌감도 날라다 준다. 이민생활이란 열심을 다해서 잘 하면 성공을 해나가는 것이 기쁘기도 하지만 잘못하면 동토나 다름없다. 그러나 세상살이가 아무리 추워도 우리에게는 서로서로 나눌 수 있는 36.5도의 따스한 체온이 있고 그보다도 더 높은 마음의 온도가 있다.

살기가 쉽지 않은 세상에서 서로서로 의지하며 생활을 꾸리는 남편이 연약한 아내에게, 아내가 고단한 남편에게 하는 사랑이 담긴 따스한 말, 아이들이 부모에게 하는 공경하는 말, 친구가 친구에게 믿음으로 하는 말, 어른들이 아랫사람에게 배려하는 마음으로 하는 말, 손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는 상인의 말, 낯선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고 건네는 말, 존경하는 마음으로 선생님에게 드리는 학생들의 말들은 따뜻한 말이다.

그러면 세상은 맑아지고 사람들의 얼굴 또한 밝아져서 한 동네에 거처를 잡고 한 세대를 함께 사는 것이 행복하다. 관계가 불편할 때 싸움도 말로서 시작이 되고 화해도 말로서 마무리가 된다. 말인 즉 동전처럼
돌고 돌아 귀에 들리는 법인데 내용이 시끄러운 말로서 세상이 맑아질 수 있겠나! 비판인즉 말이 하고 말인 즉 보약이나 독약이다. 사람에게 장단점이 있으면 단점을 보고 비판하지 말고 장점을 보고 칭송하라! 그리하면 말하는 자에게 기쁨과 행복이 되돌아 오고 비판보다는 칭송이 교육인 것이다. 그것이 말이 가지고 있는 본질이며 말의 방향이고 말하는 자의 인격 표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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