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도둑고양이 새끼들

2006-09-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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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목회학박사)

도둑고양이가 새끼 두 마리를 낳았다. 한 마리는 애비의 피를 닮아 전체가 검은 브라운색깔이다. 또 한 마리는 어미의 피를 닮아 하얀색과 브라운 색 두 가지를 갖고 있다. 8월1일 경 새끼를 낳았으니 벌써 40여일이 지났다. 그런데도 한 번도 새끼를 데리고 나오지 않았었다. 새끼 낳
은 것을 알게 된 것은 어미가 드나드는 곳을 찾아가 새끼들이 있음을 보고 알게 되었다.

그 동안 어미는 직장 동료가 주는 먹이를 열심히 먹었다. 그리고는 새끼들에게 젖을 먹였나 보다. 새끼들이 통통하게 자랐다. 너무나 귀엽다. 새끼들은 어미가 도둑고양이 인줄을 모른다. 저들도 도둑고양이의 새끼들인 줄 모르고 두 마리가 먼지구덩이 동굴 같은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복도의 의자에서 장난질을 치고 있다.
생명이란 참으로 귀하다. 도둑고양이의 새끼들을 보면서 그들의 생명이 너무나 귀중함을 알 수 있다. 비록 그 새끼들이 태어난 곳이 부드러운 천으로 깔린 사람들이 만들어 준 보금자리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들의 태어남은 너무나도 귀중한 것이다. 새끼들은 약 한 달간 아무도 볼 수가
없었다. 그동안 “새끼를 낳지 않았다”는 소문도 분분했었다.


통통하게 자란 새끼들도 언젠가는 어미가 데리고 밖으로 나와 직장 동료들이 주는 어미의 먹이를 같이 먹게 될 것이다. 이제 그 새끼들은 어미와 같이 도둑고양이라는 불명예스런 이름을 벗어 버릴 게다. 그들이 태어난 곳에서 더 멀리 달아나지만 않는다면 어미와 함께 직장내 맞춤한 보금자리에서라도 계속해 살아갈 수 있기에 그렇다.

직장 내 많은 동료들이 새끼를 보고는 너무나 귀여워한다. 새끼들을 만질 수는 없지만 새끼들이 움직이는 것만 보고도 귀여워한다. 어미 도둑고양이는 새끼들이 있는 곳에서 파수꾼의 역할을 한다. 사람이 더 이상 접근하면 달려들기라도 하듯 경계의 눈초리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모성애란 사람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도둑고양이에게도 모성애는 살아 꿈틀거리고 있다. 어미에게 먹이를 주는 직장동료는 “새끼를 키우려면 예방 주사를 맞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려면 어미를 멀리 보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 어미를 멀리 보낼 방법이 없다. 어디 그 어미가 새끼를 놔두고 멀리 가겠는가. 그들이 그대로 살도록 내 버려두는 것이 오히려 그들을 보
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도둑고양이가 어떻게, 언제부터 직장 내 창고 같은 곳에 보금자리를 틀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검은 복도, 먼지가 제법 쌓여있던 창고 복도. 그 곳에 보금자리를 틀어놓고 새끼 두 마리를 낳아 잘 기르고 있다. 처음 어미 고양이의 젖이 발갛게 부풀어 올랐을 때 동료들은 새끼를 낳은 줄로 알았었다. 그렇지만 새끼를 찾기가 힘들었다. 어린 새끼 고양이들. 생명이 둘 탄생했다. 너무나 축복된 일이다. 어미 고양이가 도둑고양이로 자라 다시 새끼를 낳아 새끼 도둑고양이로 자라게 될 두 고양이. 그들에게 사람의 손길이 갈 수 있도록 할 방법은 없을까. 야생에서 자란 그들의 피가 사람의 손길이 닿으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진다. 그래도 사람이 주는 먹이만큼은 먹으니 반은 집고양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애비 고양이는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애비 고양이는 씨만 뿌릴 줄 알았지 새끼를 보호하고 키우는 것은 어미인가 보다. 어미고양이가 무서워서 그런가. 짐승의 부성애와 모성애의 차이가 이런데서 나타나나 보다. 사람은, 아버지가 자식과 가정을 위해 얼마나 희생하며 살아가는가. 그런데 도둑고양이 애비는 새끼들이 귀엽게 자라는데도 나타나지를 않는다.
어미 도둑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직장 동료는 언젠가 애비 고양이가 나타났는데 그 애비고양이를 어미 고양이가 막아 새끼들이 있는 곳으로 접근하지 못하게 하더란다. 아마도 애비 고양이가 새끼고양이에게 어떤 해를 끼치게 할까봐 어미고양이가 접근을 막았는지도 모른다.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이런 부문에서도 나타나는 것 같다.

생명은 축복이다. 도둑고양이가 새끼 두 마리를 낳아 기르는 것 자체가 하나의 축복된 신비함을 보는 것 같다. 아무도 돌보아주지 않았던 도둑고양이. 다만, 직장 동료가 시간 맞추어 먹이 주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해주는 것이 없는 도둑고양이. 통통하게 자라는 두 마리의 새끼를 본능적으로 보호하며 잘 키우고 있다. 저 생명들이 잘 자라 또 새끼를 낳아 생명을 이어간다면 그것이 부활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생명은 무(無)에서 유(有)가 탄생되는 것. 생명 그 자체가 부활이요 축복이다. 도둑고양이 새끼들아 무럭무럭 자라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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