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빈 그릇 운동’과 깨끗한 땅

2006-09-1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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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석(정신과 전문의/한미문화연구원장)

빈 그릇 운동이라는 활동이 벌어져 있다. 정토회라고 하는 단체가 중심이 되어 진행되고 있는 이 활동의 취지는 이렇게 쓰여져 있다.

‘현재 우리나라가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쓰는 돈이 일년에 4억원이나 된다. 날마다 전세계 5살 미만의 어린이 3만명이 먹을 것이 없어 죽어간다. 우리가 음식을 남기지 않는다면 지구 환경오염을 줄일 수 있고 그 처리 비용으로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도 살릴 수 있다. 그러니 자기 먹은 음식물 그릇을 깨끗이 비우라는 운동에 모두 동참하자’는 것이다.
여러 나라 음식점을 돌아다닌 사람들은 누구나 한국음식점에서 나가는 음식 쓰레기가 가장 많을 것이라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밑반찬이라고 해서 시키지도 않은 음식을 한 상 차려준다. 거기에 밥 한그릇만 있으면 한 끼 식사에 훌륭한 상차림이 된다.


식사를 마치고 보면 대부분의 밑반찬은 끝내지 못해서 쓰레기로 나가게 된다. 아깝고 아쉽고 미안한 생각이 든다. 뒤에서 살짝 주인한테 물어보면 경쟁 때문에 할 수 없다는 것이다.다른 나라 음식점에 가면 이런 일은 절대로 볼 수 없다. 중국식당에서는 밑반찬이라는 것을 주는 일이 없으며, 일본식당에서는 노란무나 숨죽은 배추를 조금 주는 정도이다. 만일 한국식당에서처럼 조금 더 달라고 하면 돈을 더 받고 준다.

한국 가정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밑반찬과 반찬이 많이 차려지고 밥은 먹는 사람의 의사와는 관계 없이 미리 담아서 준다. 많은 음식이 남게 마련이다.미국의 다이너(Diner)라는 식당에도 문제가 있다. 밑반찬은 없지만 음식을 시키면 양을 너무 많이 줘서 많은 사람들이 다 먹지 못하고 나머지를 싸달라고 해서 가지고 간다. 그러지 않으면 쓰레기로 나가버린다.자기 음식그릇을 비우자는 것은 자기의 배가 터져도 자기 그릇에 담긴 음식을 다 먹어서 치우라는 뜻은 아니다. 때문에 자기가 먹을 만큼 그릇에 담은 것이 중요하다. 서양의 음식문화처럼 그리고 우리나라 부페 식당에서처럼 자기가 먹고 싶은 만큼 자기 접시에 덜어다가 식사를 하면 쓰레기로 나가는 음식이 확실히 줄어들 것이다.

불교의 참선 수양할 때는 밥그릇(바루)에 자기가 먹을 만큼만 덜어가고 그릇을 깨끗이 비울 뿐만 아니라 주전자 물로 그릇을 깨끗이 씻은 뒤 그 물까지 마시도록 철저하게 수양훈련을 한다.빈 그릇 운동에 참여를 하던 안 하던 자기 먹은 음식그릇을 깨끗이 비우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밤에 잠을 못 자겠다고 불면증을 호소하면서 오는 사람을 많이 본다. 불면증의 가장 흔한 원인은 머리 속, 즉 마음을 비우지 못하는 데 있다. 저 괘씸한 XX을 어떻게 하면 골탕을 먹일 수 있을까, 이 힘든 비즈니스를 때려치우고 어떻게 하면 떼돈을 벌 수 있을까, 어찌하면 경쟁자들을 다 물리치고 가장 성공할 수 있을까, 낙제를 면할 수 있을까, 내 이 병이 낫지 않으면 어쩌나, 불치의 병에 걸렸으면 어쩌나, 내 마누라가, 내 남편이 헤어지자고 하면 어쩌나, 등등 걱정, 근심, 욕심, 울화, 어리석은 생각 등으로 가득 차 있으면 잠이 올 수가 없다. 대개 쓸데없는, 지나친, 부정적인, 지나치게 걱정하는 생각들이다.

좋고, 건전하고, 건설적인 생각은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들을 마음속에서 비워버리면 어떤 괴로운 일이 있더라도 잠은 잘 잘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예로 많은 사람들이 건망증이 생겼다고 걱정 호소하는 것을 듣는다. 노망이나 치매가 걸린 것이 아니냐고 걱정스럽게 물어온다. 이 중에는 그런 병을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젊은 사람들도 많다. 좀 더 대화를 해 보면 이런 사람들의 머리속은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해결되지 않는 일에 대한 고민, 지나친 욕심, 쓸데없는 근심걱정 등등으로 가득 차 있으니 아주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머리 속에 정리, 등록될 수 없어 쉽게 잊어버리게 된다. 복잡한 생각들을 머리속에서 깨끗이 비워버리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 빈 그릇 운동을 주관하고 있는 단체는 정토회라고 한다. 정토의 뜻은 깨끗하고 맑은 땅을 말한다. 그릇을 비움으로써 오물 없는 깨끗한 지구의 땅과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다. 훌륭한 생각이다.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자기 머리 속, 자기 마음속에 있는 쓰레기 같은 생각들을 깨끗이 비운다면 이 세상은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 없이 행복하고 화목하게 살 수 있는 정토가 또한 될 것이다. 정토라는 말은 원래 불교에서 쓰는 말이다. 부처님이 머무는 세계를 정토라고 일컫는다.음식의 그릇도 비우고, 마음의 그릇도 비움으로써 완전한 정토를 이루도록 해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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