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격 미달

2006-09-18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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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자격 미달’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하면 실망할 것이다. 한술 더 떠 ‘자격 미달’로 퇴출한다면 분개할 것이다. 그러나 무생물인 명왕성이었기 때문에 끄떡 없었다. 다정한 누군가의 글에는 탐사선 뉴 호라이즌즈가 2015년 명왕성의 DNA를 보내와 친자 확인이 이루어지고, 미지의 세계가 사라질 때까지 그를 호적에 그냥 두었으면 좋겠다는 따뜻한 의견도 있었다.
이 이야기는 76년간 지구와 함께 태양계의 일원이었던 막내 별 명왕성이 최근 세계 천문학회에서 태양계 자격을 잃고 퇴출된 것을 가리킨다. 그 별은 더 이상 태양계의 가족이 아니다.

그 이유의 첫째는 충분히 큰 질량과 중력을 가진 원형에 가까운 형태를 지니지 않았다. 둘째는 공전구역 내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 셋째는 태양 공전궤도도 다른 8개와 어긋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자 자리에서도 밀려났다. 이 결정에 대한 찬반의 의견이 있었지만, 결국은 인류의 지적 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우주 인식이 달라졌음을 알려준다.이 결정을 내린 제 26차 세계천문연맹 총회 기사를 재미있게 읽었다. 인간이 우주의 별 세계까지 자격 심사를 하게 된 사실이 흥미롭고 대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까운 인류사회의 심사는 어느 정도로 하고 있는 것일까. 자격이란 일정한 신분 지위를 가지거나 어떤 행동을 하는 데 필요한 조건을 말하지 않는가.


한 사람의 자격도 다양하다. 가정인으로서, 직장인으로서, 지역사회인으로서,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등 제각기 다른 자격을 갖춰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방면의 충분한 자격을 갖추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깨닫게 한다.

우선 기본이 되는 가정인으로서의 자격 조차 갖추기 힘들다. 부모의 자격, 부부의 자격, 자녀의 자격, 어느 하나도 노력 없이는 충분한 것을 가질 수 없다. 아마 누군가가 자격 심사를 한다면 합격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어정쩡한 대로 나날을 이어가게 되며, 가족을 구성하고 있다.
이와 달리 어느 조직인으로서의 자격 심사는 엄격하게 이루어진다. 그 조직에 필요한 인재를 구하기 때문에 거기에 알맞는 심사가 이루어진다. 교사, 학생, 공장원, 회사원, 의사, 법률가, 회계사, 판매원... 등 사회 각 분야의 전문인은 훈련과 실습을 통하여 필요한 자격을 획득하게 된다. 따라서 각 분야에는 유능한 일꾼들이 소속된다.

문제는 직장인으로서의 자격 이외의 인간 자격 심사가 없는 것이다. 이 분야는 아무래도 타인의 심사를 받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이 해야만 될 것 같다. 그러니까 ‘자격 미달’이란 말도 자신의 평가가 될 수 밖에 없다. 만일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하면 듣기 싫지만, 내 자신의 평가일 때는 반성하는 계기가 된다. ‘나는 부모의 자격이 없어’ ‘나는 자녀의 자격 미달이야’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해야 되지 않을까.

하지만 자기 자신을 제어하거나 평가하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 없겠다. 첫째는 남의 티끌만한 잘못은 잘 보여도 대들보만한 내 자신의 허물은 잘 보이지 않는다. 또 다른 사람에게는 엄격하고 나 자신에게는 봄바람 같은 비평을 하기 쉽다. 그래서 자기 자신의 자격 심사에 공정성이 유지될 지 의문이다.그러나 내 자신에 대한 자격 심사를 한 번 해보는 것이다. 나는 좋은 부모인가. 어째서 그런가. 나는 부모 자격에 결함이 있는가. 있다고 한다면 어느 점에서 부족한가. 나는 좋은 자녀인가.

어째서 그런가. 아니라면 무엇이 단점인가. 나는 다른 사람의 좋은 이웃인가. 어떤 면에서 좋은가. 부족한 점이 있다면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을 생각할 때 심각해질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가볍게, 재미있게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자격 미달로 가족에게 퇴출당하지 않도록 자격을 갖출 일이다.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잡음은 서로 자격 심사를 허술하게 한 까닭이 아닐까. 태양계에서 퇴출된 명왕성은 태연하지만 만일 가족에서 퇴출된다면 가엾은 외톨이가 되는 것이다. 특히 다른 것은 몰라도 ‘인간 미달’이란 평가만은 받고 싶지 않다. 지구상에 갈 곳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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