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해할 수 없는 나라

2006-09-11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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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휘(예비역 준장)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성능 거짓말 탐지기가 필요하다. 외국 스튜어디스가 가장 싫어하는 곳이 한국 노선이다…”

서울 특파원으로 15년간 한국에 머물렀던 어느 외국기자가 쓴 책 ‘한국인을 말한다’의 한 대목이다.몹시 기분 나쁘고 언짢은 글이다. 하지만 잠시 서운한 마음을 접고 서양 언론인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자. 여기에는 우리가 깊이 새겨들어야 할 진솔한 충고가 담겨있기 때문이
다.


사람들은 자신을 객관화시키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을 잘 모른다. 남의 눈에 작은 티는 쉽게 찾아내면서도 자기 눈 속에 있는 대들보는 모른 채 지내는 게 우리네 사는 모습이다. 이 당돌한 외국기자가 한국인을 이해하는데 가장 큰 장애로 지적한 것은 편협한 민족주의다. 한국인의 ‘배타성’은 유별나다. 외국인에게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우리끼리도 자주 겪는 현상이다.

조찬회나 행사장에 나가보면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서도 낯익은 얼굴끼리만 인사 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모처럼 찌들리고 옹색했던 마음을 열고 대자연을 접하는 등산길에서도 열번 이상 만나야 서로 대화가 이루어진다고 한다.서구나 중동사람들은 낯선 사람과 쉽게 친밀감을 갖는다. 유목이나 상업 같은 이동성 생업을 꾸려온 탓으로 새로운 접촉에 익숙해져 있다.

우리는 어떠한가? 집안 문중이나 잘 아는 친지끼리 한 마을에서 평생을 정착하며 농경업으로 살아온 민족에게 내 가족과 친지는 우리 편이지만, 외부의 사람들은 믿을 수 없는 경계의 대상이며 침략자이기도 했다. 낯선 사람과는 언제나 이방인이다. 수 백개의 인공위성이 우주공간을 나르는 첨단과학시대에 살면서 우리 의식의 한 부분은 아직도 조선조의 농경시대에 살고 있음이다.

몇 해 전, 미국 LA에서 흑인난동사건이 일어났을 때 한국교민이 무법자들의 표적이 된 것을 TV화면으로 목격하고 우리는 아연실색했다. 문제는 종족과 나라마다 생활방식과 감정, 의식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요, 이를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우리네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흑인가에서 많은 돈을 벌고 잘 살면서, 이웃에 대한 배려나 봉사하는 마음은 없고 인종차별까지 한다는 평소 그 흑인들의 생각이 그렇게 분출되었을 거라는 평이었다.

핏줄과 전통, 민족 고유의 얼과 조상숭배의 정신은 간직해야 할 가치있는 덕목이다. 하지만 옹졸하고 배타적인 편파주의는 버려야 한다. 내 가족, 나의 동향인, 나의 동문, 나와 이해관계를 같이 한 사람들과 끼리끼리 붙어다니며 즐거워하고 친하게 지내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해와 감정을 달리하는 사람에 대한 적대적 감정과 행동,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나만의 이기주의, 거짓말과 사기, 고소, 고발과 모함의 범람... 우리의 아픈 곳이기도 하고 앞을 가로막는 걸림돌이기도 하다.

세계가 하나로 되어가는 시점에 벽안에 비친 ‘이해할 수 없는 나라와 그 사람들’에 대한 오명을 씻을 날은 언제일까.남을 탓하기에 앞서 이광수처럼 ‘민족 개조론’을 말하기 전에, 나부터, 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우선 할 수 있는 일부터 고쳐 나가자. 작은 일도 행함이 있어
야 결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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