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는 다르다’는 착각

2006-09-0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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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춘기(골동품 복원가)

1980년대 중반으로 기억한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작업을 마치고 센트럴팍을 가로질러 59가 나의 스튜디오로 돌아가는 길이다. 가까운 곳에서 ‘사물놀이’ 꽹과리 소리가 요란하다. 마음은 달려가고 싶은데 발걸음은 반대 방향이다. 이 때 한 무리의 남녀 동양인이 스쳐 지나간다.

앙칼진 여자 목청이 일행 중에서 터져 나온다. “아이 창피해. 저 구닥다리가 왜 뉴욕에까지 와서 저 지랄이야!”나는 흠칫 놀랐다. 나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물놀이 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는 발걸음이 이를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나는 발길을 돌려 사물놀이 변두리에 가서 앉았다. 한 쌍의 흑백 청바지 남녀가 장단에 흠뻑 젖어 사지를 흔들고 있다.한류의 두더지들! 이들은 이 땅 미국에 들어와 제일 먼저 토박이 재미한인들의 따갑고도 차가운 눈총을 받아야만 했다. 물론 동포의 일부이겠지, 그리고 소수이겠지, 아니 그것이 단 한사람이라도 슬픈 일이다.


이런 부류의 동포는 도대체 누구인가 생각해 본다. 여기에는 이민역사와 함수관계가 있는 것 같다. 80년대 초까지 한국에서 여권을 얻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당대의 이민자들의 조국과 고국인에 대한 인식이 매우 인색하고 편협하다는데 놀란다. 특히 매일 한국에 대한 넘치는 정보를 듣고 뻔질나게 서울을 들락거리면서도 매사를 매도하고 악의적 비판으로만 일관하고 있는 것을 없는 것으로 외면, 왜곡하려 든다. 특히 자신을 미국인 편에 두고 “나는 한국인과는 다르다”는 동족과의 차별을 시도하는 작태는 차라리 징그러운 희극이다. 나는 이것을 일종의 애교스러운 반항심으로 본다.

그 배경을 살펴보면 양담배, 돼지 삼겹살을 고국 선물로 사가던 시절, 동창생이 모인 신촌 다방에서 이제 넥타이 벗어던져 주고 김포공항에 환송나온 시누이에게 바바리코트 벗어주던 시절, 그 때 지구상에서 미국동포만이 누릴 수 있었던 짜릿한 만족감을 더 이상 누릴 수 없다는데 대한 역감정의 발상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것을 충분히 이해되는 애교스러운 ‘때’라고 본다. 다소 불쾌할 뿐 염려할 것까지는 없다. 이것은 재생산이 불가능한 사라져가는 계절풍일 뿐이다.시기적절하게 한류 바람이 드세게 불어오고 있다. 석달 열흘 말고 삼백년 열흘만 불어달라고 빈다.

오늘의 한류가 있기까지 한류 영화의 주역의 한 사람으로 역동적으로 활동해 오던 감독 김기덕에 대한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가슴이 아프다.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으로 미주동포사회에서도 지명도가 높은 사랑받은 김기덕 감독이 자신의 영화를 더 이상 한국시장에 선보이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본인의 말대로 한국영화시장에서 관객 동원에 실패했다는 것이 그 배경이다.

그보다도 베를린 영화제에서 감독상까지 받은 수준 높고 예술성 있는 자신의 영화가 한국영화인으로부터 너무나 무시당하고 있는데 대한 반발로 알고 있다.모두들 김감독의 심정을 이해한다. 그러나 김감독은 하루속히 돌아와야 한다. 이유는 오직 하나, 김감독은 한류영화의 주역 중의 한 사람이다. 한류에 금이 가서는 안된다. 한류는 동포의 한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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