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기발난 아이디어

2006-09-0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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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일(취재1부 부장)

한국 정부가 2008년을 목표로 미국 비자면제프로그램(VWP) 가입을 추진하면서 지난해 10월부터 올 7월말까지 한국인의 미국비자거부율이 3.5%에 달하자 외교통상부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우리 정부는 거부율 3% 미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민관협력으로 비자 거부 가능성이 적은 기업인 및 학계인사 등을 대상으로 미국 비자신청 캠페인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발표한 것이다.이는 VWP 가입의 고려 대상이 되기 위한 가장 기본 조건인 ‘1년간 거부율 3% 미만’에 맞추기 위해 비자 발급 확률이 높은 사람들이 비자를 신청토록 하겠다는 일종의 ‘편법’을 대응책으로 내놓은 것이다.


그러나 VWP 가입 조건이 규정하고 있는 ‘3% 미만’은 관광 또는 사업 목적으로 미국을 방문하는 단기체류 비이민비자만의 신청 대 거부의 비율을 따지는 것으로 이 비자는 관광객과 사업가 등 미국 방문 목적이 뚜렷한 사람들이 신청하는 비자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비자 거부율이 3% 미만을 기록하지 못하는 것은 실제로 관광 또는 사업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한국인들이 관광·사업 비자를 신청하고 있기 때문인데도 이 문제는 제쳐놓고 이같은 발상을 하게 됐는지 기가 막힌다.그러나 비자거부 원인의 근본 문제를 외면한 외교통상부의 ‘편법’이 설사 성공한다 하더라도 결국 한국과 한국인, 그리고 미주 한인들을 망신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VWP 가입 후 그 자격을 유지하는 조건은 더욱 까다로워지기 때문이다.
VWP 국가는 가입 전 기본 조건 외에도 VWP 혜택이 주어진 국가 국민의 미국입국 거부사례, 입국 후 체류기간을 넘기거나 체류신분을 변경하는 사례 등 비율에 따라 VWP 자격을 박탈하게 돼 있다. 실제로 2002년 2월 아르헨티나가, 2003년 4월 우루과이가 실례다.외교통상부는 특정국가의 VWP 가입 결정 권한을 갖고 있는 국토안보부(DHS)가 최근 발표한 2005년 1월 현재 미국내 불법체류자 현황 보고서에서 한국인이 21만명으로 국가별 순위 6위를 기록한 사실을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

또 역시 DHS의 미국 추방 현황 보고서가 미국에서 추방되는 한국인이 매해 꾸준히 증가해 가장 최근 통계인 2004회계연도에 전년도 보다 172명이 늘어난 503명에 달한 사실도 알고 있는지 의심스럽다.정부의 목적 달성에 혈안이 돼 조만간 거부율이 낮은 사람들의 미국 관광, 또는 사업 목적 방문을 국민의 혈세로 재정 지원하겠다고까지 발표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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