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반도가 중국땅이라고?

2006-09-0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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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한국 TV에서 방영되고 있는 인기 드라마 ‘주몽’은 고조선이 중국의 한나라에 망한 후 한4군의 하나인 현도군에 대한 유민들의 저항운동을 그리고 있다. 이 저항운동의 과정에서 고구려가 건국된다. 한국사에서는 여러 왕조가 흥망성쇠를 거듭하였으나 고구려만큼 기상이 높고 강성한 나라는 없었다. 한반도 북부와 만주 일대를 세력권으로 한 고구려는 중국의 통일왕조와 대결한 강대국이었다.

중국이 이 고구려를 자기네 역사라고 우기면서 우리의 역사를 빼앗고 있다. 고구려의 옛땅 대부분을 현재 중국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유적이 중국땅에 있다. 중국은 고구려를 중국사에 끌어 넣고 고구려의 유적을 유네스코에 자기네의 문화유산으로 등록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인들의 분노와 항의는 불같이 일어났었다.
그런데 최근엔 고구려를 이어받은 발해를 중국사에 편입시켰다고 한다. 이른바 좥동북공정좦이란 이름으로 한국사 빼앗기 작업을 하고 있는 중국정부 산하의 사회과학원이 이런 내용의 발해 책자를 발간했다고 한다. 그 뿐 아니라 중국은 고조선에서 한4군, 고구려, 발해로 이어지는 역사가 모두 중국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고대 한국사는 대부분이 중국 역사라는 것이다. 또 이런 주장이 과거의 역사에만 그치지 않고 현실문제로 연결되고 있다. 고구려 문화유산의 유네스코 등재에 이어 오는 2018년에는 백두산에서 동계올림픽을 개최하겠다는 것이다.고조선과 고구려의 역사가 중국사라면 한강 이북의 한반도는 고대 중국의 땅이 된다. 한강 이북이 원래 중국의 땅이었는데 한국이 점점 밀고 올라와 오늘날처럼 한반도가 한국의 땅이 되었다는 것이 중국측의 주장이다. 이런 주장이 인정된다면 지금의 북한은 과거에 중국의 땅이었다.
만약 북한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여 영토문제가 국제분쟁의 대상이 된다면 중국이 유리한 입장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와같은 중국의 주장이 억지라는 것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고대 중국사에서 중국은 우리를 예맥족, 또는 동이족이라고 했다. 예맥족의 중심국가는 고조선 이후 부여였고 부여에서 고구려가 나왔다. 또 고구려에서 백제가 나왔고 고구려가 멸망한 후 그 후신이 발해이다. 고려시대에는 단군과 고구려 시조인 동명성왕을 국조로 받들었다. 고려 성종 때 거란이 자기네가 고구려 후신이라고 주장하면서 고려를 침공했을 때 서희는 “우리는 고구려의 후신이므로 나라 이름을 고려라고 했다. 너희 땅도 실은 우리의 땅이다”고 말해 거란을 물러나게 했다.

중국의 말대로 고조선이 중국의 땅이었다면 한나라가 왜 고조선을 치고 그 자리에 한4군을 두었는가.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었다면 왜 고구려가 한4군을 물리쳐 내쫓았을까. 고조선과 고구려는 중국이 아닌 이민족 국가였기 때문에 중국과 사활을 건 싸움을 했던 것이다. 고대 중
국의 영역은 진시황이 이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았던 현재의 북경 이남지역이다. 만주와 한반도까지 자기네 영역이었다는 말은 터무니 없는 주장이다.
중국은 지금 사상 최대의 통일국가를 이룬 후 세계무대에 강국으로 부상하면서 신 중화사상의 망령을 되살리고 있다. 과거에 오랑캐로 여겼던 한국(동북공정), 티베트(서남공정), 위구르(서북공정)가 모두 자기네 역사이며 몽고의 징기스칸이 중화민족의 영웅이라고 끌어붙이고 있다. 그렇다면 몽고제국이 점령, 지배했던 유라시아 대륙이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는 억지로 이어질 수 있다.

사태가 이렇개 돌아가고 있는데도 한국정부는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고 별 대응을 못하고 있다. 미국에 대해서는 그렇게도 자주권을 내세우고 독도문제가 나오면 입에 거품을 뿜는 정부가 중국 앞에서는 왜 이렇게 작아지는 것일까. 우리는 일제 36년 압제에 대해서는 치를 떨지만 한4군 이후 2000여년간 우리 민족을 지배해 온 중국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못하고 있다. 2년 전 고구려사 왜곡 문제가 불거졌을 때 한국정부의 고위관리가 “이 문제에 시비를 걸면 중국은 물론 미국과도 갈등이 생긴다”면서 문제삼지 말자고 했다는 것이다. 학계 전문가들은 이런 정부의 태도가 오늘과 같은 사태를 만들었다고 한탄하고 있다. 이러다가 자주를 좋아하는 노무현 정부가 을사오적이 나온 구한말 망국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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