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누가 ‘도박공화국’을 만들었나

2006-09-0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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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주필)

요즘 한국에서는 온통 ‘바다이야기’가 화제이다. 누구의 말처럼 횟집 이름같은 바다이야기는 사행성 게임업체이다. 게임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카지노에서 하는 도박과 같은 것으로 컴퓨터에 소프트웨어를 설치한 게임기를 통해 돈을 걸고 도박을 하는 것이다. 게임회사는 마치 프랜차이즈 비즈니스처럼 돈을 받고 곳곳에 게임장을 설치해 주며 게임장을 소유한 업자가 도박업을 해왔다. 이러한 사행성 도박업과 함께 게임기를 제조 판매하는 회사, 카지노의 칩처럼 편법적으로 사용한 상품권을 발행하는 회사 등 관련 비즈니스가 번창했다.

이러한 사행성 게임이 처음으로 등장한지 2년 밖에 안된 지금 한국은 전국이 카지노로 변했다. 서울 시내의 중심가는 물론이고 주택가 골목까지 게임방, 성인 PC방이란 이름으로 도박업소가 넘쳐났다고 한다. 서울 뿐 아니라 지방에도 곳곳에 게임업소가 생겨나 전국이 노름판으로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최근에 사행성 도박에 대한 단속이 이루어지면서 다세대주택의 살림집을 전세내 게임기를 설치하고 불법 도박업소를 운영해온 업자도 체포되었다니 가히 도박공화국이란 말이 나올만 하다.


사행성 게임으로 인해 서민들은 그나마 조금 가졌던 돈을 모두 날려버리고 알거지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 경제적 고통에다 가정마저 깨지고 정신적으로 황폐해져 자살하는 사람마저 나타났다. 반면에 사행성 게임 비즈니스를 한 사람들은 큰 돈을 벌었다. 게임업소도 돈을 벌었지만 게임업소를 차려주고 게임기를 팔고 상품권을 발행한 업자들은 재벌기업 규모의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다고 한다. 드디어 사행성 게임이 사회문제와 정치문제로 비화되기에 이른 것이다.사행성 게임업은 신종 비즈니스이다. 그 전까지는 강원도의 폐광지역에 대한 생활대책으로 카지노의 설치를 허가하여 카지노 도박만 허용되었다.

그런데 노무현정부가 들어선 후 게임이라는 신종 비즈니스가 생기면서 정부가 게임업의 기준을 완화하고 상품권 인증제를 실시하는 등 결과적으로 사행성 게임을 조장하는 제도를 실시하여 오늘과 같은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이처럼 게임업이 문제가 되자 정부는 정책적 실패를 자인하고 대국민 사과까지 했다. 정부가 잘못해서 이런 사태로 발전했다는 설명이다. 노대통령은 “도둑을 맞으려면 개도 안 짖는다”고 이번 사태는 정부가 문제점을 몰라서 사태를 악화시키게 되었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관계기관에서 이미 지난 해에 게임업의 폐해에 대해서 문제점을 거론했다는 일부 지적이 있고 보면 정책적 실패라고만 할 수 없을 것 같다.

게임업계에서는 이전부터 이 게임업의 배후에 여권의 지지실세들이 있고 앞으로 정부 차원에서 게임업에 대한 제도를 뒷받침을 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고 한다. 최근 사행성 게임이 문제화되면서 언론에 일부 여권지지자들의 업계관련 사실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고 게임업을 둘러싼 정관계 로비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전혀 근거없는 소문이 아니었던 것 같다.정치에서 정권을 잡으려는 것은 명분상 좋은 정치를 하려는 것이라고 하겠지만 실제로는 정치에서 떨어지는 콩고물과 팥고물을 얻어먹으려는 욕심 때문일 것이다.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정치 신참세력은 그야말로 빈털털이들이었으므로 무엇이든 닥치는대로 먹어야 할 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과거의 정권처럼 재벌을 뜯어먹으면 정경유착이란 말을 듣게 될 것이고 또 정서적으로 반기업적인 그들이 재벌과 한 통속이 될 수는 없는 처지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새로운 발상이 나오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면 왜 여권의 지지실세들의 이름이 이런 업계에 오르내리며 정부가 어떻게 이와같은 정책적 실패를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그런데 만약 이러한 의혹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과거 어느 정권보다도 악질적인 부정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정권이나 정치인이 재벌에게서 몇 억원, 몇 십억원을 먹었다 해도 그것은 재벌에 특혜를 주는 정도의 폐해밖에는 없다.

그러나 전국을 도박장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나라를 망치고 모든 국민을 사기친 행위가 된다. 또 개혁이란 눈속임을 위한 사기극이란 말밖에 되지 않는다.그러므로 사행성 게임으로 인한 이번 사태는 정책적 실패란 사과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철저한 진상규명으로 실체를 밝혀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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