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도 한국인이기 때문에

2006-08-3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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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정(회사원)

뉴욕은 세계의 170개국 이상의 국민들이 모여 사는 명실상부한 국제도시다. 그래서 길거리는 물론이고 직장이나 사업장에서도 여러 나라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한국에서 태어난 나 자신과는 달리 이곳에서 태어난 자식들은 처음 만난 사람끼리 서로의 이름을 소개한 후 상대방이 “어디 출신이냐”고 물어오면 “뉴욕”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꼭 상대방은 “어디서 태어났느냐”고 물어온다. 그러면 “플러싱병원”이라고 답한다. 그러면 상대방은 약간 당황한 듯 “아니, 내셔날리티(nationality)가 뭐냐”고 묻게 된다. 그제서야 “코리안 아메리칸”이라고 대답한다.

아무리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해도 외모 때문에 이런 대화는 피해 갈 수 없는 생활의 일부임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된다.
나는 나의 자식들이 그들 나름대로 대학을 나와 다른 여러 나라들을 여행해 본 후 자신들이 미국 시민임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알지만 ‘코리안 아메리칸’이라는 아이덴티티에 대한 긍지를 얼마나 느끼고 있는지는 아직 정확히 모르고 있다.한국인들이 미 전역에 퍼져서 하고 있는 ‘마사지 팔러’를 생각하면 항상 살얼음을 딛고 살아가는 느낌이었는데 또 ‘인신매매 사건’ 뉴스가 터졌다. 이런 한국에 대한 좋지 않은 뉴스가 보도될 때마다 나는 제일 먼저 세 자식들은 하는 일이 바빠서 뉴스를 접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지만 항상 그들이 먼저 듣고 오히려 전자메일로 나에게 알려준다.


‘한국인들이 자식들의 영어 발음을 좋게 한다고 혓바닥 수술을 한다”는 뉴스도 그랬고 ‘독도문제 때문에 한국여인이 손가락을 잘랐다’는 뉴스 때도 그랬었다.허리를 졸라매야 했던 가난 속에서도 예절이 반듯하고 도덕만은 잘 지켜지는 나라라고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원래 약속 지키는 것에 익숙치 않은 한국인들은 그 사회의 약속인 법은 잘 지키지 않는 편이다. 호주머니 속에 있는 돈이 자기 대신 법을 지켜 주리라고 확신하며 살아왔고 또 그런 확신이 한국에서는 입증되기도 했었다.

여기는 미국이다. 예의나 도덕보다는 법이 사회의 최전방에 서서 진두 지휘해 가고 있는 나라에 와 있다. 호주머니 속의 돈은 더 이상 자기를 보호해 주기는 커녕 자기를 더 옭아매는 오랏줄이 될 가능이 많은 나라에 와 있다는 의미가 된다.한국이 정말 세계 경제의 11번째 대국이 맞는가.
요즈음 한국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입만 뻥긋하면 세계경제의 11번째 대국이란 말을 한다. 숫자상으로 보면 그 말은 틀린 말이 결코 아니다. 그리고 지금도 ‘조국 통일이라면 이 몸 하나 던져 부실 각오 돼 있습네다’고 벼르고 있는 북한동포들을 도운다고 선뜻 2,000억 물량을 보내주는 걸 보면 더욱 더 확실한 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어째서 한국보다 훨씬 가난한 세계의 다른 200여개 국가의 국민들은 하지 않는데 한국인들만 몸이라도 팔아야 먹고 살 수 있는 것같이 세계인들 앞에 보이고 있는가.너무 늦은 것인가?실상은 많이 늦은 느낌이다. 처음에는 처방약만으로 완치가 가능하던 것이 이제 대수술을 해도 살아남을 것을 보장할 수 없는 중환자와 같은 지경인 것 같다. 어느 한 지역의 동포들만 나선다고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전 미주지역이 공동으로 힘과 지혜를 모아야만 가능성이 보이는 동포 역사상 가장 힘든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랄 수 있다.

지난해 한국인들에게 그렇게 창피함을 안겨주었던 황우석 사건은 외국 기관이 아닌 한국 자체에서 조사, 처벌해서 상당히 이미지 손상을 회복하는 결과를 얻었었다.필자가 그래도 희망을 거는 이유가 있다면, 평생에 한 번 이용해 볼지도 모르는 유형의 자산인 한인회관 건립에도 그렇게 동포들이 성원했는데 값으로는 결코 산출할 수도 없는 무형의 자산인 동포 전쳉돠 그 자손들에게 영원히 전달될 ‘한국인의 이미지’에 관한 것이기에 미주동포와 한국에서까지도 크게 호응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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