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신매매와 사회적 책임

2006-08-2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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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의 눈

2006년 2월27일 맨하탄의 한 여자가 “가슴이 큰 애가 필요하다”고 하자 한 남자가 “최근 유방수술을 한 애가 있는데 곧 데러가겠다”고 답한다.

이 대화는 미 연방수사국(FBI)과 이민세관단속국(ICE)이 맨하탄 59가에서 매춘업소를 운영한 혐의를 받고 있는 50대 한인 여성과 업소에 한국인 윤락녀들을 공급한 혐의를 받고 있는 플러싱 거주 30대 후반 한인 남성의 전화 통화를 도청한 내용이다.

FBI와 ICE가 이번 수사 과정에서 도청한 전화 통화는 1,000여통에 달한다.
특히 도청 대화 내용 중 매춘업소 운영책이 공급책에게 “가슴이 큰 애”, “키가 큰 애”, “체구가 작은 애”, “어린 애”, “앳된 모습의 얼굴” 등 업소에서 일할 여성들의 구체적인 신체조건과 “영주권자”, “합법체류자”, “불법체류라도 밀입국자보다는 합법적으로 들어온
사람” 등 체류신분을 조건으로 내세워 ‘주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공급책이 “77년생을 찾았다”, “가슴은 작지만 영주권이 있다”, “한국 목욕탕에서 일하던 애가 있다”는 등 공급 가능한 여성을 흥정하는 부분은 사람을 물건처럼 사고파는 ‘인신매매’ 그 자체다.


이외에 “어제 저녁에 손님이 많아 애들이 다 지쳐있다”, “주중에는 40명, 주말에는 60명 손님이 있다”, “우리 애들은 월 1만5,000~2만달러를 번다”는 내용은 2~6명의 윤락녀를 두고 영업한 것으로 드러난 이들 업소에서 한 여성이 하루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매춘 행위를 했는지 짐작케 해준다.

물론 이번 단속 과정에서 FBI와 ICE가 인신매매 피해자로 연행, 모처에서 보호하고 있는 70여명 윤락녀 중 일부 또는 상당수가 돈을 벌기 위해 자진해서 이같은 생활을 했을 수도 있다.

이번 단속으로 미주 한인들은 이미지가 엄청 손상됐지만 인신매매 피해자 가운데 단 1명이라도 본인의 의사와 다르게 위협을 느끼며 매춘을 강요당하다 구출됐다면 그것만이라도 소득이라고 위안을 삼아야 할 듯하다.

신용일(취재1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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