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짜 명품

2006-08-22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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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국에서는 고가의 가짜 명품 시계가 적발되었다고 한다. 몇 만원짜리를 몇 백만원에 팔았다는 것이 과연 한국인의 사기술은 세계 최고가 아닌가 생각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어떤 가짜 시계는 거의 1억원에 팔렸다고 한다. 와! 시계가 1억원짜리가 있다니...

3년 전 한국의 가짜 명품 밀수액이 1조원이었다. 관세청 발표가 그 정도면 실제로는 수 조원이 넘었을 것이다.


가짜 명품, 참으로 희한한 말이다. 가짜가 하도 많은 세상이어서 나는 가끔 가짜 인간, 가짜 정부, 가짜 대통령, 가짜 총리, 가짜 남한도 있지 않나 생각된다. 어떤 때는 헷갈려서 돌아버릴 지경이다.

가짜를 밀수하는데 그 정도의 돈을 썼다면 진짜 명품을 수입하는데는 못 사는 나라에서 또 얼마나 비싼 외화를 썼을까.

진짜 명품이라... 그게 과연 어찌 생겼을까. 나는 한 번도 보지 못했고 볼 마음도 전연 없다. 그걸 왜 보겠는가. 얼마나 할 일이 많은 세상인데.
명품을 찾는 사람들의 심리 상태는 어떨까? 명품은 주로 겉으로 드러나는 것일 것이다. 시계, 양복, 핸드백, 드레스, 뭐 그런 잡다한 것일 것이다.

무인도나 섬, 시골 한적한 곳에 사는 사람들도 명품을 살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런 곳에서는 남에게 폼 잡을 일이 없을테니까.

남이 봐서 “저 사람 성공했나봐” “돈 많이 벌었나봐” 하는 평가를 받고 싶어서 명품을 산다면 참으로 딱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남의 평가가 그리도 중요할까? 평가는 자신이 하여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명품이 보기도 좋고 질기고 오래 가서 오히려 싸게 먹힌다는 사람도 있다. 과연 그럴까.

나는 오랫동안 10달러도 안되는 시계를 차고 다녔는데 잘만 간다. 가끔 배터리를 갈아 끼우는데 5달러가 든다. 아까워 하던 차에 아들이 사 준 휴대전화가 생긴 후 아예 시계가 필요 없어졌다.


미국에는 프리간(Freegans)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교육수준이 높고 대부분 중산층 사람들인데 쓰레기통을 뒤지면서 혹시 멀쩡한 음식이 버려져 있지 않나 하고 찾는 사람들이다.

물론 상하거나 남이 먹던 음식은 가져가지 않는다. 이들은 돈을 주고 음식을 사 먹을 수도, 백화점에서 명품을 살 능력도 있는 사람들이다. 프리간들의 기본철학은 “자원을 최소한도로 쓴다”는 것이다.

이들은 세계의 수많은 ‘동료인간’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음식을 다 먹지도, 아예 먹지도 않고 그냥 버리는 것에 분개한다.
이는 비단 음식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별로 필요하지도 않는 것을 사기 위해 죽자 살자 일하지는 않는지. 더 많이 산다→더 많이 일한다→더 많이 사야한다. 그래서 더 많이 일해야 한다. 이런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지나 않는지.

더 많이 사는 것 중에 혹시 가짜 명품이라도 들어가 있지는 않는지. 나는 Freegan이 있다는 것이 왜 미국이 강한가 하는 한 이유라고 굳게 믿는다.
나는 뉴욕시 아동보호국 한국어 통역관으로 오래동안 일해왔다. 많은 한인가정을 방문하여 부모들 얘기, 자녀들의 얘기를 듣는다.

어찌하면 부모와 자식들의 거리가 좁혀지나 하고 애쓴다.
가끔은 내가 부모들과, 또 그 자녀들과 얘기할 기회가 생긴다. 나는 어린 학생들에게 검소하게 생활하도록 얘기한다.

내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세대가 실상(實像)과 허
상(虛像)을 구분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명품, 그것이 가짜건 진짜건 그런 쓸데없는 것에 정신이 팔려서는 더 중요한 것을 놓치기 십상이다. 자식들은 가난하게 키워야 한다.

언젠가 내게 어떤 분이 “혹시 명품 몸에 지니고 있는게 있어요” 하고 물어서 “아무 것도 없어요” 했더니 지갑 한번 꺼내보라고 한 적이 있다. 그 분이 내 지갑을 보더니 “거 봐요, 명품이네요” 해서 무안했던 적이 있다. 오래 전에 아내가 사준 것이었는데 꽤 비싼 걸로 기억하고 있다. 이제는 많이 낡았지만 그래도 아내가 사 준 것이니 무덤까지 이 명품(?)을 가져갈 생각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명품족이 아닌가.

김륭웅(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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