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용감한 폭력

2006-07-1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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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성(뉴저지)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월드컵 경기가 끝났다. 축구가 무엇이길래 이리도 세상이 온통 열기로 야단법석이었는지 가슴이 답답하다. 결국 승부차기 다섯번으로 결승을 판가름하는 싱겁기 짝이 없는 게임이 아닌가!
이태리의 승리로 돌아가게 되어, 선수들은 물론 흥분의 도가니 속에 주체를 못하는 그 국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남의 일이라서가 아니라 허탈감까지 느끼는 건 과연 나 뿐일까?

참으로 씁쓸한 거는, 프랑스의 주장이자 MVP의 영예를 안은 지단 선수가 월드컵 결승에서, 그것도 현역 생활을 불과 10분 밖에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마테라치’ 선수에게 박치기를 날렸다는 것이다. 세계가 보는 현장에서의 얘기다.오늘 최근들어 온 뉴스 전까지만 해도 ‘마테라치’라는 자 왈, “지단이 거만해서 가벼운 욕을 했다”고 생거짓말을 했는데, 오늘 지단이 밝힌 바에 의하면 “마테라치가 자신의 어머니와 누이를 모욕하는 심한 말을 퍼부은 데 격분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고 한다.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다고 우리는 쉽게 말을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동네 뒷골목에서도 주먹질이 난무하고, 정부 상대로 시위를 한답시고 데모를 하다가는 국민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 통제하는 경찰에 화염병을 던지고 투석 행위가 자행되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지단은 “나의 행동은 용서받지 못할 행동이다. 그 장면을 본 전세계 모든 어린이들에게 사과한다”고 분명히 말을 했는데, 나는 지단 선수가 정말 용감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어 감히 이 졸필을 들었다.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한 사람에게는 벌이 가해지고 입과 말로 주먹보다 더 아프고 심한 욕설이나 말을 한 행위에 대해서는 죄를 묻지 않고 벌로 다스리지 않는다면 인간이 제정한 법규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도를 닦은 수도자가 아니고서야, 자기 어머니와 누이에 대해 쌍욕과 인격을 모독하는 욕설을, 그것도 전세계가 다 보고 있는 결승전 경기장에서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씩이나 반복해서 해댔다면 지단 뿐 아니라 그 누구도 박치기가 아니라 더한 폭력을 행사했을 것이다. 그래서 무모한 자극이나 도발행위는 우선 삼가해야 마땅할 것이다.

나는 가끔 권투시합을 보면서 경기 종료 전까지는 서로 대천지 원수인양 치고 박고 하다가도 끝에 가서는 서로 안으며 상대방의 등을 어루만져주는 선수들을 보며 비록 남을 때려서 쓰러뜨려야 하는 난폭한 시합을 치루는 직업을 가졌지만 나름대로 스포츠맨으로서의 소양을 갖춘 듯한 모습에 흐뭇해 하곤 했다.축구경기에서도 결사적으로 뛰어나가다 보니까 어쩔 수 없어 상대방과 함께 넘어지거나 본능적으로 쓰러지면서 다른 선수의 옷자락을 잡게 되고, 또 발목이 걸려지는 상황들을 보아왔지만 먼저 일어난 선수가 쓰러져있는 선수의 손을 잡고 일으켜주는 정경이나 부상당한 선수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선수들의 인간미 넘치는 진지한 모습들을 보면서 정말 훌륭한 스포츠 정신을 몸과 마음으로 닦고 함양한 사람들이라고 찬사의 박수를 보내곤 했다.

그런데 이 이태리의 ‘마르코 마테라치’는 용서받기 힘든 ‘언어의 폭력’을 행사했고, 또 자기가 내뱉은 언사에 대해 계속 졸렬하게 거짓말을 했을 뿐 아니라 책임은 커녕 회개하는 기미를 안 보인 인물이다. 파렴치한이라는 형용사가 적합한 경우이다. 물리적인 폭력이 아니라고 해서 말을 막 해대고 입을 놀리는 폐단이 있지만, 무서운 것은 이런 따위의 말이 한번 나가면 누군가의 가슴에 가 박혀 치유가 잘 안되는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 정신과 몸까지도 다치게 한다는 데에 그 심각성이 있는 것이 문제이다.
퇴장당하던 지단 선수의 씁쓸했던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법과 질서의 규범으로 다스리지 못한 행위에 대해 행동으로 당당히 대처한 지단 선수에게 당시에 얼마나 분을 삭일 수가 없을 정도였으면 그랬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그 용감한 기백(?)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또한 이런 지단 선수에게 MVP인 ‘골든볼’의 영예를 발표한 국제축구연맹에게도 경의의 인사를 보낸다. ‘비신사적 반칙’으로 퇴장당한 선수가 MVP에 뽑힌 것은 이색적이 아닐 수 없다. 사실을 왜곡하고 남의 험담을 떡 먹듯이 해대는 군상들이 활보하는 현실에서 금번 ‘지단’의 박치기 사건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클 뿐 아니라 전 축구팬들과 현장을 목격했던 모든 이들과 관계자들의 식견과 현명한 판단과 결단은 한층 눈물겨웁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아직도 세상은 진리가 통하고 진심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다수라는 걸 보면서 행위와 행동도 삼가해야 하겠지만 ‘입조심, 말 조심’을 하는 하루 하루를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새삼 해 본다.자신의 은퇴에 대해 “난 다시 그라운드에 돌아가지 않는다” “난 쉬고 싶다. 그리고 나중에 다른 뭔가를 하고 싶다”고 말한 지단선수의 앞날에 하느님의 가호가 있기를 기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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